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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Song Jun 02. 2022

연구교수에서 엄마로만 살기로 한 용감한 엄마의 도전기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취득 2

마지막 시험을 치른 게 언제 인가? 박사학위 과정 때 졸업시험이 마지막 시험이었던 것 같다. 책을 보며 암기하고 공부하는 게 얼마만인가? 오랜만이면 시험도 약간은 설렘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실기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왜 이렇게 정보가 없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조리사 시험은 대부분 전공이 요리 쪽 이거나  식품 영향 쪽인 학생들이 서로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시험을 준비하곤 하더라. 방법 있나? 여기저기 요리학원에 직접 가보고 전화 문의해보고 하면서 정보를 찾았다. 그 와중에 내일 배움 카드라는 것이 있으면 나의 배움을 일부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카드를 신청하고 요리학원을 선택했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 기관에 있는 시간 동안에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라고 하니 다른 부족한 면이 있어도 나는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요리학원 방문 첫날이다. 설렌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맞아 나 원래 이런 거 좋아했었다. 늦지 않게 도착했다. 나는 너무 앞자리도 아닌 너무 뒷자리도 아닌 곳에 자리를 잡는다. 관심 없는 척하며 실습실로 들어오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눈 맞춤을 한다. 나는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기를 바란다. 15명의 학생들과 선생님 한분이 조리실습실 안에  모두 모였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하고 수업을 시작한다. 20대 학생들이 가장 많고 나랑 비슷해 보이는 애매한 분들과 연세가 꽤나 있어 보이시는 어르신 2-3분 정도가 있었다. 20대 학생들은 조리를 꽤나 배웠던 전공자들인 듯 보인다. 슬슬 승부욕이 발동한다. 나는 이 과도한 승부욕 때문에 많이 다치거나 아프게 될 때가 종종 있다. 한 품목을 시연해 주시고 학생들이 직접 요리를 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정적 속에 15명의 칼 소리가 탁탁 탁탁 요란하게 들린다. 40분 정도 지났을까? 다했다고 말하는 20대 학생이 등장한다. 점점 급해진다. 나는 4번째로 요리를 완성했다. 요리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지만, 실기 준비생 중에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내 존재감이 올라가고 있다. 나는 우등생 반열에 올라갔고 항상 첫 번째나 두 번째로 요리를 마치고 완성도도 꽤나 높았다. 손이 빠르고 멀티가 가능해야 제한시간 이내에 두 가지 요리를 완성할 수가 있다. 아무래도 학생들보다는 나이 짬바가 있다 보디 평생 요리해 보았던 총시간은 내가 더 길겠지? 연세가 있으신 두 분은 스스로의 습관이 이미 깊게 박혀 있어 고치기 어려워하셨다. 어찌어찌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고 나는 바로 실기시험을 접수했다. 실기학원 수료가 끝나고 실기시험까지 3일 정도의 시간이 있어 그동안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체크해 놓았던 품목들과 기술들을 익혔다. 한 번에 합격하고 싶었다. 필기와 실기 모두 합격률이 20% 정도 되는데 두 가지 모두를 한 번에 합격하면 내 자존감이 급상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분들은 시험장에 가서 고난도의 품목이 나오면 그냥 도망쳐 오겠다는 분들도 있더라. 하지만 나는 한 가지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에 합격하고 싶은 욕심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실기시험 중에 내가 느끼기에 가장 어려웠던 품목은 생선을 이용한 요리였다. 조기를 이용한 생선구이는 그나마도 할 수 있었지만 동태를 이용한 생선전과 생선찌개는 너무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동태찌개는 정말 울면서 조리를 했어야 했다. 동태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나는 평소에 개미도 밟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다. 큰 동물들은 좋아하는데 작은 곤충이나 파충류, 벌레 같은 것들은 극도로 무서워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유치하지만, 초등학교 때 송 씨라는 이유로 짖꿎은 남자 친구들이 나무에서 떨어진 송충이를 잡아 등 쪽 옷 안에 넣곤 했다. 사실 나는 너무나도 무서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참았다. 내가 무서워하면 상대 친구가 나를 우습게 볼 거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괴로웠지만 참았다. 잘 기억이 안나는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 나는 몇 가지 추억 중에 하나다. 그래서인지 나는 벌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고 기어 다니거나 날아다니는 벌레나 곤충을 보면 내 몸에 달라붙은 것 같은 극도의 소름을 느끼고 한다.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벌레를 무서워 하지만 임상의과학을 박사학위로 전공했고, 대학병원 심장내과 연구실에 있었다. 어이없게도 나는 실험용 쥐를 이용하여 동물실험을 해야만 했다. 부검실에 쥐 10마리와 나 혼자 남아 이 10마리 모두 부검을 끝내야만 퇴근할 수 있다는 선배의 말에 6시간 만에 부검을 마치고 나왔다. 그날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며칠 동안 쥐들이 꿈에 계속 나올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나는 마취가 된 쥐가 더 이상 생명체로 보이지 않았다.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동물 실험을 계속하기 위한 최선의 합리화라고 해야 할까? 나는 동물실험을 매우 잘하는 박사가 되어 있었다. 그 이유 때문인지 개복, 개흉 하고 수술을 하거나 부검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잘해 내는데 어이없게 외상을 보지 못했다.  옆 피부과 실험실에 실험용 쥐의 털을 밀고 화상실험을 하는데 소름이 돋고 구역질이 났다. 최고의 동물 핸들링 스킬을 지니고 수술 실력도 매우 높았던 내가 어렵지도 않은 화상 실험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때 느꼈다. 나는 아직 외상을 보는 게 여전히 힘이 드는구나..  


생선찌개를 하기 위해서는 동태 손질을 해야 한다. 그나마도 생선전은 동태 머리를 잘라버리고 포를 뜨면 되는데 동태찌개는 동태의 주둥이만 자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주둥이는 위생상 깨끗하지 않지만 생선은 눈을 포함한 머리가 찌개에 들어가야 한다며.. ㅎ어두육미라 하지 않는가.. 나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주둥이를 제거하고 머리 안에 있는 내장을 손질하고 아가미를 뜯어내야 한다. 주둥으를 칼로 제거해 내는 작업도 내장과 아가미를 뜯어내는 과정도 나는 너무 힘들었다. 소름이 계속 올라오고 덜덜덜 무서워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손질하다가 개수대에 던지고 손질하다가 개수대에 다시 던지고를 몇 번을 반복하고 땀과 눈물을 흘려가며 조리를 완성했다. 내가 동태 손질을 힘들어하는 모습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글로나마 나를 이해받고 싶어 어릴 적 송충이 이야기와 대학시절 외상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다. 


실기시험이 3일 남았다. 내가 젤 힘들어했던 품목들을 연습해 보려 한다. 사실 31가지의 품목 중에 2가지 품목이 시험에 출제되기 때문에 모든 품목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시험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남들은 쉽게 쉽게 넘어가는 일들도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주변에 큰 도움받지 못하고 나 스스로 해내야 했다. 내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을 텐데. 나는 항상 도움을 받기보다는 도움을 주고 사는 입장인 것 같다. 시험 전날 고민을 하다가 시장에 가서 동태 두 마리를 사 왔다. 장갑도 껴보고 마음을 다 잡아 본다. 먼저 그나마 수월한 생선전을 완성했다. 자 이제 동태찌개를 해보려 한다. 수업 때와 변한 게 없다. 난 또 한 보따리의 눈물과 땀으로 요리를 완성했다. 다행히도 가족들이 맛있게 드셔주신다. 


시험 당일 날이 되었다. 재료를 제외하고 식기나 주방용품들 등.. 대부분을 준비해 가야 해서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실기시험장으로 갔다. 긴장 속에 가운과 앞치마 입고 주방 모자를 착용했다. 수험표와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을 하고 자리 추첨한 순서대로 실기 시험장 안으로 들어간다. 실기 시험장 안에 조리대에는 시험에 나오는 두 품목의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들어가지 마자 나는 역시구나 생각했다. 조리대에 커다란 동태 한 마리가 놓여지 있지 않겠나. 그래 역시 내 인생은 쉽게 가는 법이 없지. 동태전도 아니고 동태찌개였다. 같이 나온 화양적도 고난도로 유명한 항목이었다. 화양적이 6개의 재료를 각각 조리해 꼬치에 꽂아내야 하는 요리라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화양적부터 시작했고 완성했더니 15분이 남았다. 동태는 아직도 개수대에 방치되어 있는 상황. 시간이 없다. 제출을 못하면 실격이다. 나는 급하게 물을 먼저 끓여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풀어주었다. 이 물이 끓기 전에 나는 동태를 손질해야만 했다. 준비해 간 장갑을 낄 겨를 도 없었다. 중간중간 소름이 올라오지만 기적적으로 3분 만에 동태 손질을 해냈고 나는 시간 내에 두 품목 모두를 제출했다.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이 이 상황에 아주 적절했다. 


2주 뒤 시험 결과가 나왔고, 나는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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