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학원 졸업기
졸업을 했다.
독일대학은 한국과는 달리 졸업식이 따로 없다. 논문 디펜스를 마치고 통과하면 그날이 바로 졸업이다. 졸업장은 약 한 달 후에 학과시험사무실에 각각 방문하여 받거나 우편으로 받는다.
한국에서도 귀찮아서 대학 졸업식에 안 갔는데, 이번엔 어쩐지 아쉽긴 했다.
그래서 졸업식 대신에 논문 디펜스를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해 보겠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논문에 대해 요약한 것을 15-20분 정도 발표 하고, 30-40분 동안 질의응답을 하게 된다. 발표에 대한 것은 걱정이 없었으나,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니 친구들과 시간을 재서 모의연습도 하고 chat GPT로 질문목록등을 뽑아서 대비했다.
발표 전 긴장도 풀 겸 건물 밖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이전에 먼저 발표 들어갔던 친구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오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그 친구는 학과 친구들이랑 만든 논문 피드백 그룹에서 제일 똑똑하고 열심히, 잘하는 친구였기에 나는 질겁하여 아껴놨던 청심환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내 다음으로 대기하던 친구는 사색이 되었다)
시험장으로 쓰는 강의실엔 지도교수와 부지도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청심환을 2개나 먹은 탓인지 다행히 편하게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마음이 편해진 탓에 나는 몇 가지 헛짓거리를 하고 말았다. 논문에 대한 교수의 질문에,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식의 부적절한 맞받아침을 시전한 것이다… 나는 한국어로도 딱히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몇 가지 헛소리들을 더 했던 기억이 난다. 질의가 끝나고 나면 교수들이 점수를 매기는 동안 밖에서 대기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정말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점수를 받았다.
지도교수와 부교수가 (갑자기)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린 이 점수를 매기는 데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네요. 만장일치로 점수를 1.0을 주기로 했습니다”
엥?
여기서 잠깐,
독일대학은 한국과는 점수 시스템이 다르다. 독일에서 1.0이 최고점, 4.0은 거의 Fail에 가깝다. 그러니까 내 논문이 최고점을 받았다는 소리다. 페이퍼 과제할 때는 내 글이 너무 설명적이고 비판적 관점이 없다는 피드백을 종종 들었던 터라서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나온 점수였다.
발표점수는 1.6을 받게 되었는데, 내 논문의 명확한 주장에 비해 발표에서 그렇게 자신감 있게 방어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내 주제에, 정말 한국인스럽게도) 1.6을 듣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는데, 교수들이 그 점수도 굉장히 좋은 점수라고 말해주었다. 발표와 페이퍼 점수를 합산하여 최종 점수는 1.1을 받고 졸업하게 되었다.
논문 디펜스에 대해서 들은 팁 중엔, 고의적으로 교수들이 공격적인 톤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할 수도 있는데, 이때에 침착하게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논문에는 A라는 주장을 썼는데, 여기에 말려서 ‘아 B일수도 있겠네요 하하..’라고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앞서 발표한 친구 중 한 명은 평정심을 잃고 오히려 "왜 그렇게 방어적이냐"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더 말을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조금 남지만 그래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그날 발표가 끝난 친구들과 모여서 점수공유를 하고 간단히 학교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다. 몇 장 찍지도 않았는데 독일스럽게 먹구름이 끼고 비가 오는 바람에 다시 친구의 기숙사로 돌아갔다.
나는 기분이 어쩐지 얼떨떨했다. 이게 끝이라고?
내가 말을 꺼내자 친구들도 다들 동조하면서, 그동안 목표로 하고 달려온 게 있는데 그게 한순간에 끝나버리니 기쁘다기보다는 뭔가 애매모호하게 현실감이 들지 않고, 앞으로 뭘 할지 막막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독일인 친구들은 필수인턴십을 안 해도 되었기에 전부 3학기 만에 학교를 탈출하였고, 모인 친구들 모두 인터내셔널 친구들이었다. 5년 전에 우리가 독일에 와서 독일대학을 다니고 졸업할 줄 알았냐며, 독일에 처음 왔던 경험, 코로나 때의 경험 등등의 감회를 이야기하며, 점수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감사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나야 뭐.. 5년 전에도 독일에 올 계획이 있었고, 따로 목표한 학교가 있었고, 그 학교에 가지 못해 차선책으로 선택한 이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그렇게 감격적이진 않았다. 그렇지만 10년 전을 생각해 보면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평생 영어로 논문 쓰고 학교 다닐 줄 알았나. 어쨌든 간에 내가 원하던 학과에 다닐 수 있었고, 독일에서 제2의 가족 같은 친구들을 만났고, 인턴도 해보고, 졸업도 하였으니 감사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시기에 입학하여 독일 대학원에 다니고..인터넷 아트와 사이버 페미니즘에 관련한 졸업논문으로 척척석사가 되어 세상에 내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