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기
하루는 뉴욕 경찰에게 스탑오버를 당했다.
친구가 운전하던 차가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다. 급하게 차를 돌리면서 보니 도로 앞을 경찰차가 막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들기가 무섭게 경찰차는 한번 삐용- 하는 소리를 내며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순간 유투브에서 무수히 보았던 미국 경찰들의 바디캠이 떠올랐고 나도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우리는 방금 전에 있던 바에서 맥주 한잔씩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이었고, 친구 B는 다른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다 나를 픽업하러 와주었던 참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B가 마침 도로 앞을 막고있던 경찰차를 향해 거의 돌진하듯 질주하다가, 급하게 유턴을 했다. 운전을 왜 이따위로 하는거야?! 속으로 외쳤다.
뉴욕의 고속도로에서 운전이란 전쟁같은 거였다. 어느날 고속도로를 타고가다가 휙휙 차를 돌리는 친구에게 물었다.
- B, 왜이렇게 무법자처럼 운전하는거야?
- 여기서는 이게 방어운전이야. 다른차들을 봐.
몇분도, 아니 1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양보는 커녕, 모든 차들이 공격적으로 끼어들 틈을 노리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다들 차분하게 양보운전 하던데. 뉴욕은 정말 다르구나.
경찰차에서 내린 NYPD 두명이 방탄조끼에 손가락을 끼우고 특유의 거만해보이는 걸음으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다행히도 B는 침착하게 그냥 길을 잘못들었다고 설명했고 별다른 요구 없이 우리는 길을 벗어날 수 있었다. 겁에 질려있던 나를 보며 B가 하하 웃었다. 진정해, 침착하기만 하면 별일 없어. 그리고는,
"차 안을 검사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트렁크에 있는 내 총을 봤으면 귀찮아졌을텐데 하하"
"뭐?? 진짜로? "
몇번이나 귀찮게 되묻고나서야 나는 그게 농담이었다는 걸 겨우 믿게 됐다.
뉴욕에 가기 전, 친구가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코카인과 케타민에 빠져있었던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Calvin과 Klein이라고 불렀다던 우스운 일화였다.
그의 다른 친구 하나는 뉴욕의 큰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친구는 미친짓을 즐겨했다. 코카인과 케타민 봉투를 구분없이 둔 다음에 어떤게 무엇인지 맞추는 룰렛게임을 하는 것이 그녀의 놀이었다. 그 버릇덕에 어느날은 파티에서 사람들에게 코카인이라고 착각한 케타민을 나눠주고는 자신도 울며불며 토하고 난리를 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자면 내가 질린 사람들이 애교수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에 처음 온 사람들은 처음엔 파티와 약물의 세계에 눈을 빛내면서 다가간다. 그리고는 마치 철학과 신입생들이 첫학기 수업을 듣고 세계의 진리를 깨달은 듯,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미친듯이 전파하기 시작한다.
지난번 트립이 말이야, 얼마나 굉장했냐면,
지난번 에프터 파티에서 내가 뭘 봤는지 알아?
그딴 얘기들.
인생이 변하는 경험.
다른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던가, 우주를 경험했다던가. 그딴 시시한 이야기들을 마치 엄청난 수련과 고뇌 끝에 얻어낸 깨달음을 말하는 선지자처럼 들뜨게 늘어놓는 그저 그런 사람들, 그렇게 변한 친구들을 몇번 겪고 나니, 나는 이 모든게 너무나도 시시해졌다.
뉴욕은 약이 조금 더 일상화되어있는 느낌이다. 베를린이 파티를 위해 약을 추앙한다면, 뉴욕에서는 뱅커들이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혹은 더 잘 기능하기 위해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에 돌아와서 검색해보니, 베를리너들은 뉴요커보다 바나 파티에 덜 가고, 덜 술을 마시며, 약물 또한 덜 한다는 통계를 발견했다. 베를린에 질려버렸던 이유 중의 하나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알코홀리즘과 파티드럭이었다면, 뉴욕은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한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참 묘하다. 브룩클린 대교를 건너며 창 밖으로 보이는 맨하튼의 야경을 보는 순간이 그랬다. 그건 현실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다른세계 같았다.
제 1세계의, 너무나도 부유한 도시. 그리고 또 베를린의 날것과는 다르게 잘 정돈된 혼잡의 도시.
그건 원본의 도시였다.
뉴욕의 센트럴 스테이션을 보면 강남 고속터미널이 떠올랐고, 타임스퀘어에서는 강남역이 스쳤다. 그리고 윌리엄스버그의 그래피티를 보며 베를린을 떠올렸고, 곧 그래피티의 원조는 뉴욕에서 시작되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홀린듯이 말했다.
– 야경 정말 멋지다. 아주 돈냄새가 풀풀 나네.
– 맞아. 그런데 냄새만 맡고 만질수는 없지.
저 건물들은 서울이 폐허속에서 일어서기 훨씬 전부터, 아니, 미국이 미국이기 전부터 우뚝 서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베니스에서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버린것처럼,
베를린에 돌아와서 나는 달라진 시차를 덤으로 뉴욕병을 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