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북을 덕질하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 서점
저는 심심할 때 목적 없이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언제부터 서점에 가는 걸 좋아했는지 생각해 보면 그냥, 어릴 때부터 한 달에 몇 번쯤은 멀리 떨어진 광화문 교보문고에 다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주로 만화책 코너에서 서성였지만 점점 자연스럽게 내가 끌리는 책, 매거진을 눈여겨 보면서 내 관심사를 알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죠.
서점에 가서 이곳저곳 여유롭게 둘러보며, 숨겨진 보물들과 내 관심사를 다룬 책들을 발견하는 기쁨은 베를린에서 역시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베를린의 서점들은 영어서적을 꽤나 많이 팔고 있습니다. 예술서적, 독립출판시장도 활발하고요. 한국 책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가서 괜찮은 책을 발견할 수 있는 괜찮은 서점을 찾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이제 책도 굿즈처럼 되어버린 이상 텍스트를 완전히 다 읽는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떤 책들이 있는지 둘러보는 재미, 그리고 내 관심사를 덕질하듯 수집하는 재미가 저한테는 더 중요한 것이죠. 나중에 기획에 필요할 때 그동안의 수집품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레퍼런스에 참고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독립서점 탐방은 여행을 계획할 때에 종종 제 여행의 테마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다 보니 다른나라를 여행할때 서점방문은 오래 전부터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네요. 그러다 보면 여행객들은 모르는, 로컬 맛집이나 로컬 노다지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지요.
책을 사지 않고 카운터 근처에 있는 엽서만 사더라도 잘 보면 뒷면에 잘 모르던 디자이너나 디자인 스튜디오 이름이 있고, 눈여겨 본 책의 아티스트를 알게되고, 결국 내 취향을 더 깊이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베를린에 방문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즐겨 방문하는 독립서점과 재밌는 책들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각 서점 이름을 클릭하면 웹사이트로 이동합니다.
모토 베를린은 날카로운 취향을 가지고 있거나 무언가 엉뚱하고 재밌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서점입니다.
엠비언트와 실험음악이 잔잔하게 깔려있는 오묘한 분위기 속에서 방문객들이 코너마다 샅샅이 물건들을 체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이곳은 예술가들이 직접 소규모로 출판한 사진집, 도록, 엽서, 아티스트북 등 시각예술 독립출판물의 노다지라고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독일 내에서 발행된 것뿐 아니라 다른 유럽국가, 아시아, 간혹 가다 한국어로 된 작업물을 발견하기도 하죠. 이곳에는 갈 때마다 보물찾기 한다는 각오로 가야 합니다. 어쩐지 뒤죽박죽인 공간이지만 그래서 마음에 드는 출판물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에요. 아주 소규모로 인쇄된 책이 많기 때문에 갈 때마다 큐레이팅된 서적이 조금씩 다릅니다. 정규 발행되는 매거진이나 유명한 사진집 등도 있지만 그런 책들은 이 서점의 주요 상품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Do you read me(이하 두유리드미)는 다양한 문화예술 매거진, 사진집, 예술평론 등의 서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모토 베를린이 정말 인. 디., 독립출판물을 찾아볼 수 있다면, 여기에서는 조금 더 다양한 장르의 출판물을 볼 수 있어요. 요리, 여행, 사진, 비평, 건축, 예술이론 등등이 큐레이션 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매거진 코너가 볼 때마다 흥미롭네요. 다른 장르에 대해서 조금씩 맛보기를 할 수 있는 서점이라고 할까요?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파는 에코백이 은근히 좋은 기념품이 되기도 하고요.
이곳은 이렇게 주제별로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온라인에서 마음에 드는 잡지를 찾으면 주로 두유리드미에 입고가 되어있나 확인하고 방문하는 편입니다. 소규모 출판사에서 나온 매거진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사진 속에 있는 Cake zine을 구매했습니다. 디저트 류에 속하는 음식(예를 들어 사탕)을 매번 주제로 잡고 그에 관련된 사진, 일러스트, 짧은 글이나 픽션 등을 수록한 매거진이에요.
이렇게 서점의 뒤쪽에는 텍스트가 주가 되는 예술서적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은 대형서점에서는 구석에 밀려나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에서는 비교적 최신 서적, 또는 화두가 되는 주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영어로 된 출판물이 많아서 좋은 곳이죠.
알렉산더 플랏츠 역에서 내려서 역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카페들도 나오고, 관광객이 한번 정도는 방문하는 구간이기에 꼭 들러보라고 추천하고 싶네요.
타셴은 꽤나 잘 알려진 예술서적 전문 출판사입니다.
아카이빙과 연구에 특화된 출판사죠. 이 출판사의 스토어가 베를린에도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 방문하면 타셴에서 소장하고 있는 포스터와 책을 구경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버전이 있는가 하면 특대형 크기에 희귀한,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책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비치되어 있는 장갑을 끼고 말이죠.
이 출판사에서 나온 예술, 디자인 서적들은 값비싼 대신에 아름다운 디자인과 깊이 있는 내용으로 유명합니다. 출판사에서 직접 기획해서 나온 책들로, 소장 가치가 있고 연구자료로 쓰기에 좋은 책들이 많아요. 기획해서 나온 책들은 일단 사면 나중에 희귀해졌을 때 값이 몇 배로 뛴다고도 하죠.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책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갔을 때는 이 책을 전시하고 있었죠.
독일의 유명 사진작가 엘렌 폰 운베르트 작품집,
가격도 가격이지만 없어서 못 구하는 이 책을 여기서 구경할 수 있었어요.
심지어 웹사이트에는 재고가 없다고 나오는데 직접 가보니 한 권씩은 재고를 보유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책도 있습니다. 강아지 사진집! 반려견을 키우는 친구에게 선물하면 너무 좋아할 것 같지 않나요?
구글맵에서 상점 내부를 구경할 수도 있습니다.
디자인, 사진, 미국 영화나 애니메이션 산업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아니, 사실 모든 사람들이 방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인데요, The Library of Esoterica 시리즈 중의 하나인 책입니다.
마법과 마녀에 대한 신화, 역사, 예술작품, 대중문화 등등 방대한 레퍼런스를 다루고 있는 자료집이에요. 뉴욕에 있는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자마자 홀린 듯이 일단 집어왔는데, 제대로 보니 타셴출판사더라구요. 더 찾아보니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더라죠.. 아카이브를 주로 하는 책은 독일에서 잘 나온다고 하더니, 정말 그러네요.
이 서점은 칼 라거펠트가 가장 좋아하는 서점이었다고 하죠.
1980년에 오픈한, 꽤나 오래된 독립서점입니다. 에스반 역에 바로 붙어있는 서점으로, 둥근 아치형 천장이 인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모든 예술분야의 책들이 있지만 특히 무용과 영화에 관한 책은 직접 어떤 책을 고르면 좋을지 조언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희귀한 중고책들도 팔고 있고요. 밖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가 꽤나 큽니다.
모던 그래픽스는 프란츠라우어 베억에 위치해 있는 그래픽 노블, 만화책을 주로 다루는 서점입니다.
고전 그래픽 노블인 마블, 디씨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만화 중 인기 있는 것들도 조금 있어요.
무엇보다도 그림책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아름다운 책이 있기에 가끔 선물할 일이 있을 때 가는 편입니다. 크기나 가격이 조금 부담스럽다면, 전통적 방식으로 얇게 나오는 카툰 매거진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영어버전 책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이 서점의 장점이죠! 아무리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해도 대문자에 손글시로 써진 독일어로 읽으면 내용에 집중이 잘 안 되거든요.
이건 선물 받은 책인데, 현모양처에 주부인 아내가 사실은 천재 킬러(?!)라는 고전내용을 재미있게 담은 내이죠.
이 책도 모던 그래픽스에서 구매한 책으로, 단편 카툰들이 실려있습니다.
이런 류의 책들은 완전히 비닐커버로 덮여있지 않아서 내용을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어요.
여기서 책을 구매하고 선물포장 요청을 하면, 포장지마저도 카툰이 프린팅 된 종이를 쓰는데 너무 귀엽네요. 영어원서인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이외에도 도시건축과 디자인 서적이 많은 Pro qm이나, 매거진을 주로 큐레이션 하는 서점들, 퀴어 관련 큐레이션에 집중한 서점들이 베를린에 여러 군데 분포되어 있습니다.
독일에 와서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며 오히려 한국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는데, 한국어 책을 놓으면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특히 조금 화재가 되었던 책들은 약 1년 후에나 한국에 번역본이 나오니, 접근성이 좋은 환경에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앞으로 종이책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소규모나 개인 출판은 더 많아질 세상에서 소비할 가치가 있는 아날로그 콘텐츠를 구매하는 것은 더 좋은 컨텐츠를 위해서, 그리고 결국에는 나 자신의 취향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소비가 없으면 결국은 소멸할테니까요.
베를린에 방문하는 사람이던지 이미 살고 있는 주민이던지,
한번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절제할 수 없이 내 컬렉션을 확장해 주는, 그런 서점들을 소개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