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숨구멍
숨구멍이 필요했다. 나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만 이 이야기들을 배설하기에는 너무 세상에 나 혼자뿐인 것 같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허심탄회하게 전부 털어놓는 건 내 몹쓸 독립심과 사회적 책무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배출하는 매개로써 글이라는 가장 값싼 방식을 택했다.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뿐이라서 그렇다. 그것도 문학성이 가장 떨어지는 완연한 산문이다. 내 글은 아리송하거나 읽을 때 버퍼링 걸려서 되돌아가야 하는 것 없이, 그냥 읽히는 대로 읽으면 읽힌다(그렇기를 바란다).
나는 내 아이디어를 가장 잘 부호화하는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해서 고른다. 내가 고른 단어와 형태소의 집합으로 이뤄진 문장, 문장이 여럿 모여서 이루는 문단, 문단 여럿이 모여 이루는 내 글은 나의 온도와 나라는 사람을 닮아 있다. 찰나에 머무는 바람 같은 생각을 이런 형태의 산문글로 표현하기까지, 난 사실 그 생각을 붙잡아두고 정체를 파악하고 구체화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이건 그냥 내가 글을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ChatGPT가 나보다 훨씬 빠르고 논리적이고 간결하게, 훨씬 더 많은 분야에 대해서 순식간에 글을 토해낸다. 그 녀석은 정보를 다루는 글쓰기를 한다면, 나는 언어를 다루는 글쓰기를 한다. 그 녀석은 하지 못하는 가치 판단을 나는 내 중심을 지키는 한 가감 없이 해댈 수 있다. 그 녀석은 컴퓨터가 쓰는 언어로 굴러가지만, 나는 인간이 쓰는 언어로 굴러간다. 컴퓨터 언어와 인간 언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오류를 허락하느냐’에 있다. 컴퓨터 언어는 대/소문자, 스페이스 하나, 따옴표나 기호 하나의 오류도 허락하지 않는다. 한 점의 실수 없이 완전무결한 언어만 알아 듣고 작동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오류를 무한히 생성하는 동시에 그 오류를 걷어내고 맥락을 통해 언어 형식 저변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다. 나의 글은 그러한 인간적인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다.
평생 글만 쓰고 살아도 좋을 만큼 좋다. 왜냐면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나는 너무 자유로워진다. 후련하다. 혹여나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자동 좋아요 말고 ..), 그냥 들어주고 알아봐주고 자기만의 감정을 느끼다가 갔으면 좋겠다. 공감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끄덕이기만 해도 된다. 오류를 허락하고 언제든지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적인 나의 글이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숨구멍이 되었으면 한다. 내 존재가, 내 진심이 어디에 가서 닿을 수만 있다면 그건 아주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