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울릉도 우리 집

나의 어린 시절

by 전병근

울릉도 우리 집


1969년, 울릉도 도동항.

그 시절의 도동항은 큰 배 하나 제대로 품지 못하는 작은 품이었다. 포항에서 떠나온 여객선과 화물선은 모두 이곳으로 들어왔지만, 부두가 좁아 배는 직접 닿을 수 없었다. 바다는 깊고, 항은 작았다. 그래서 큰 배는 항 한복판에 앙카를 내리고, 양쪽 절벽 쪽으로 길게 로프를 걸어 고정해야 했다. 그 바위산 위에는 울릉도의 향나무들이 푸르게 서 있었고, 그 향내는 바다 바람을 타고 내려와 마치 우리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느껴졌다.

도동항의 바다는 고향 냇가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맑고 얕은 물 대신, 깊고 어두운 청록빛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어린 나는 그 깊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저 아래에는 어떤 생물이 살까…”

말끝도 내기 전에 두려움이 먼저 마음을 잠식했다.

배에서 내려 좁은 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하수가 흘러내리는 작은 개천이 있었고, 그 옆 돌무더기 뒤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비누 거품의 하얀 냄새와 삶의 냄새가 뒤섞인, 가난하지만 정취 있는 풍경이었다.


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작은 연탄공장이 나타났다. 겨울철이면 연탄가루가 눈처럼 날렸고, 그 검은 먼지 속에 섞여 일하던 사람들의 삶은 더 검게 얼룩져 있었다. 훗날 나 또한 그 공장에서 몇 해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은 겨울 한철의 잠깐 일거리일 뿐이었다.

하천을 따라 다시 오르면 울릉중학교의 높은 담벼락이 그림자처럼 서 있고, 그 아래로 감리교 제일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 교회를 다녔다. 새벽 네 시마다 울리던 종소리는 어린 내 삶을 깨우는 첫 번째 세상의 소리였다.

어떤 새벽에는 종을 직접 치고 싶다며 졸라대던 기억도 있다.

그 울림은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계속되고 있다.


교회를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비릿한 하천 냄새에 섞여 우리 집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소는 울릉도 남면 도동 2동 4반.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1층 연립주택 여섯 채가 줄지어 서 있었고, 그중 두 번째 집이 우리 집이었다. 비록 작은 단칸방 하나였지만, 대부분이 세를 살던 시절에 우리는 고향의 논을 팔아 어렵게 마련한 ‘빚 없는 내 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한 칸짜리 집은 부모님에게는 자존심이었고, 우리에게는 좁지만 안전한 둥지였다.

그러나 현실의 공간은 좁았다.

다섯 식구가 한 방에서 지냈고, 곧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여섯 식구가 서로의 숨결을 맞대고 누웠다. 밤이면 발과 발이 부딪히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이불 하나에 온 가족의 체온이 뒤엉켰다.

집에는 화장실도 없었다.

공중화장실까지는 150미터.

푸세식 두 칸짜리 화장실을 온 동네가 함께 썼다.

아이들에겐 너무 먼 거리였기에, 남자아이들은 대개 하천 근처에서 볼일을 봤다. 가끔은 화장실 한쪽에 떨어진 종이돈을 줍기도 했는데, 누군가 휴지로 착각해 쓴 것이었다. 그런 발견조차 작은 행운처럼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집 뒤로는 가파른 언덕이 이어졌고, 땀이 날 만큼 걸어 올라가면 충혼탑 두 개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현충일이면 군민들이 모여 제례를 치렀고, 마지막에 울리던 실총 소리는 어린 우리에게는 두려움보다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 언덕을 더 오르면 약수터가 나왔다.

물맛이 독해 많이 마시진 못했지만, 친구들과 누가 더 빨리 마시나 내기를 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울진의 고향집에는 전기도, 수돗물도 없었다.

하지만 울릉도에는 있었다.

전기는 섬 안의 작은 발전소에서 나왔고, 수돗물은 성인봉 자락의 샘에서 흘러왔다.

전등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쏟아지는 그 당연한 일이, 당시의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문명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에는 전화도 있었다.

통화가 잘 안 됐는지, 목소리를 크게 내야 했고, 덕분에 동네 어디에 있어도 전화가 걸려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울릉도의 하루는 늘 ‘소리’로 흘러갔다.

1969년 도동항의 그 작은 집은 불편했고, 가난했고, 숨 돌릴 틈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웃음과 눈물, 고단한 숨결과 바다의 냄새가 함께 어울려 살았다.

밤이면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고, 새벽이면 교회 종소리가 하루를 깨웠다.

나는 그곳에서 자라며

‘가난해도 따뜻한 삶’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 기억들은 지금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짙푸른 울릉도의 바다처럼 묵직하게, 그리고 조용히 출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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