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병아리의 눈빛
울릉도의 겨울 바다는 언제나 거칠었다.
하늘은 잿빛 천처럼 낮게 드리워졌고, 파도는 날마다 절벽을 두드리며 분노를 토했다.
그 바다를 다섯 해 동안 마주하던 우리 가족은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다.
오징어잡이에 기대어 버텨 왔지만, 더는 삶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육지로 나가자.”
그 말 한마디가 우리의 울릉도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섬에 들어올 때 논 한 자락 팔아 들고 왔던 희망은 어느새 빚과 허기만을 남긴 채 사라져 있었다.
고향 울진으로 돌아왔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저 집은 또 망했대.”
그 말은 겨울 바람보다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결국 아버지는 고향마저 떠나기로 했다.
울진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작은 항구, 죽변항.
그곳이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라 했다.
하지만 그 길은 가족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큰형은 고모집으로, 작은형은 울릉도의 가구점으로.
그리고 나는 친척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어린 동생 둘만 데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났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골목을 천천히 돌아나갈 때,
나는 고무신 끝으로 먼지만 툭툭 차며 서 있었다.
“얘야, 울지 마라. 며칠이면 익숙해진다.”
할아버지의 말은 따뜻했지만, 어린 마음엔 아무 위로도 되지 않았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채로 밤이 찾아왔다.
불 꺼진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검은 하늘 위, 별 하나가 아른거렸다.
그 희미한 빛은 어쩐지 엄마의 눈빛을 닮아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매일 밤 그 별을 찾으며 잠이 들었다.
별빛은 멀었지만, 그것만이 세상과 나를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
친척집에서의 생활은 배고픔과 눈치의 연속이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너희 집은 그렇게 먹을 게 없었냐?”라는 말이 따라왔다.
그 소리에 조금씩 말문이 닫히고, 웃음도 사라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허기가 먼저 나를 맞았다.
그러나 먹을 건 없었고, 결국 물만 연거푸 마시다 보면 눈앞이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마루 밑에서 암탉이 낳은 알 하나를 발견했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닿자 배고픔이 나보다 먼저 반응했다.
본능처럼 알을 깨트려 입에 들이려던 순간—
그 안에서 작은 병아리가,
아주 또렷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말 그대로 생명의 첫 불꽃이었다.
놀란 나는 손을 놓았고, 알껍질은 바닥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졌다.
그 자리에서 나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병아리의 눈빛이, 꼭 내 눈빛 같았기 때문이다.
굶주리고, 외롭고,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아이의 눈.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알을 건드리지 않았다.
밤이면 그 작은 눈빛이 떠올라 잠을 설쳤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다.
큰형의 장례식장에서,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친척 형수님을 만났다.
이야기 끝에 문득 그 시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울릉도의 겨울바다, 별빛, 배고픔, 그리고 병아리의 눈빛까지…
말을 이어가는 동안 가슴이 차오르고, 어느 순간 목소리가 떨렸다.
형수님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말보다 따뜻한 위로였다.
며칠 뒤, 형수님이 짧은 문자를 보내왔다.
편지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그때의 너는 작았지만, 세상 누구보다 단단했다.”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 것은 그때 나를 올려다보던 병아리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눈빛이 내게 말했다.
너는 결국 살아남았다고.
그 시절의 너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고.
어느 소년의 추억
이 윤 숙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했던 11살 소년은
밤마다 생각나는 가족들 생각에 잠 못 이루고
맡겨진 친척집에서 동화속의 주인공이 되어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하나 만들었네.
학교에 다녀와서 먹을 것 찾다가
마루 밑에 보이는 계란 한 알에 눈이 번쩍
할머니의 꾸중보다 배고픔에 못 이겨
우선 먹고 보자, 톡 깨어보니
날개달린 병아리가 꼼지락 꼼지락
겁먹은 소년은 얼른 거름더미에 묻고
친구네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네.
사정 얘기 듣고 구해준 친구의 계란 한 알
마루밑 그 자리에 감쪽같이 넣어두었건만
이튿날, 눈치 채신 귀신같은 할머니
달걀이 바뀌었다, 이실직고 하라 시네.
어미닭이 품고 있던 알이 아니면
그곳에 다시는 알을 낳지 않는다는 걸
철이 들고난 나중에야 알게 되었건만
할머니는 그때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 글을 읽고 내 삶의 일부분이라 곧 답장을 드렸다.
어느 소년의 추억 2
전 병 근
으스스 바람소리 대나무밭 언덕 옆에
외딴집 언덕위에 할배 할매 그리고 나
고요히 세상은 잠들어 있지만
훌쩍이는 나의 그리운 사랑
하얀 눈비내리는 매서운 바람결에
가슴까지 파고드는 그리움의 연속
잠시나마 잊으려고 친구 만나고
돌아오는 길 대나무 숲은 무서움으로
몸서리 쳐지네.
옛날사람 배운 삶의 경험으로
항상 엄하게 다스리는 그분들 말씀
왜 나를 두고 갔을까 원망도 했건만
어릴 적 그때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 수도 없고 그저 그렇게 야속한 나날들
이제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면
조금은 알 것 같은데 답을 모르네.
나도 부모 되어 아들들을 가르치지만
그 아들들의 대답은 그 옛날 나와 같구나.
또 세월이 흘러 잊혀질 때는
나의 세상은 여기가 아니고
또 다시 먼 저간 그분들과 삶을 함께 하려나
삶의 기로의 한가운데 서서
나는 비로소 자연이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