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울릉도의 겨울
어린 시절, 울릉도의 겨울은 매년 나를 덮어버리는 커다란 흰 이불 같았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세상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섬의 겨울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새벽에 부엌문을 열려 하면, 문틈 사이로 바람조차 들어오지 않을 만큼 눈이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아버지는 한숨 섞인 기색으로 삽을 들고 나섰고,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눈밭에 뛰어드는 순간 모든 것이 잊혔다.
그러나 잠시의 흥겨움이 지나고 나면, 그 끝에 남는 것은 언제나 묵직한 고요와, 어린 마음이 감당해야 했던 어쩐지 모를 외로움이었다.
우리는 집 앞의 눈더미를 치우며 그 안에 동굴을 만들곤 했다.
차디찬 손으로 눈을 파내고, 작은 몸을 구겨 넣어 친구들과 마주 앉으면 그곳은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또 하나의 은신처였다.
밖에서는 바람이 울었지만, 동굴 속 공기는 희미하게 따뜻했고, 서로의 숨결은 작고 조용한 난로가 되었다.
세상은 매섭고 날카로웠지만, 그 속에서 잠시나마 마음이 녹아내리던 순간이 있었다.
아마 그것이 내가 처음 만난 ‘겨울의 온기’였는지도 모른다.
새벽 네 시, 적막한 마을 위로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그 종소리는 어린 나에게 하루의 시작이자, 희망을 깨우는 첫 숨 같은 것이었다.
성경책 한 권 없던 아이였지만, 설교와 동화 같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고이 새겨 두었고, 그 말씀들이 내 안 어디쯤에서 작은 등불이 되어 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교회는 글자보다 마음을 먼저 배우던 나의 첫 학교였다.
하지만 울릉도의 삶은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기운에 무너져 가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늘 싸늘했다.
나는 그 그림자를 피해 다니며 조용히 어른이 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
착한 아이가 되려 애썼고, 교회에서는 앞줄에 앉아 꼿꼿이 말을 들었다.
어른을 보면 밝게 인사했고, 작은 일에도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그 모든 행동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를 대신해 세상에 사과하듯 내 나름의 방식으로 건넨 ‘미안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 경상북도지사 표창을 받으며 모범생 대접을 받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 찬 바람이 스며들었다.
손끝에는 여전히 차가운 눈의 감촉이 남아 있었고, 눈동굴 속에서 함께 웃으며 몸을 비비던 친구들의 얼굴이 먼 설경처럼 떠올랐다.
박수 소리와 상장의 빛깔은 화려했지만, 정작 내 마음을 채운 것은 어린 날의 쓸쓸한 바람이었다.
이제는 그 시절의 눈도, 동굴도, 새벽 종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장면들은 내 마음 어딘가에서 여전히 조용히 내리고 있다.
울릉도의 그 겨울은 가난했지만 따뜻했고, 외로웠지만 분명히 빛이 있었다.
그 하얀 추억 한 장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하얗게 내리던 그 시절의 겨울처럼, 나는 지금도 때때로 그 기억 속에서 조용히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