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볏짚 속의 별빛
울진의 밤
울진.
세상 사람들은 그곳을 ‘공비가 출몰하는 오지’라 불렀지만,
나에게 울진은 그저 집이자, 열네 살의 나를 품어주던 하나의 세계였다.
산은 늘 짙고 물은 차갑게 반짝였으며, 밤이면 개 짖는 소리와 매미 소리가 뒤섞여 어둠을 흔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야, ○○야! 시험 준비 안 하냐?”
친구의 장난스러운 외침에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웃었다.
우리 집에는 책상도, 전등도, 조용히 앉아 공부할 방도 없었다.
시험공부란, 나에게는 어쩌면 ‘해본 적 없는 꿈’ 같은 일이었다.
밤이 되면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문을 차고 들어왔다.
쾅—
그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찢어지듯 흔들렸다.
어머니는 숨을 죽였고, 동생들은 부엌으로 몸을 숨겼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이놈의 집은 왜 이 모양이야! 내가 돈을 벌어다 줬는데…”
고함이 터지자, 집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나는 교과서를 품에 끼고 조용히 헛간으로 나왔다.
후레시 하나를 켜고, 흙바닥 위에 엎드린 채 문제를 풀었다.
밖에서는 욕설과 깨지는 그릇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귀를 막지 않았다.
‘이 소리쯤은 이제 익숙하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속삭이며, 희미한 불빛 속에서 글자를 더듬었다.
그때의 나는 어둠보다 더 깊은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작은 길 하나를 찾고 있었다.
피와 눈물의 밤
한겨울, 크리스마스 이브.
유난히 매서운 바람이 골목을 파고들고, 하늘엔 별이 반짝이던 밤이었다.
아버지가 또 술에 취해 들어오자, 나는 동생 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달아났다.
친척집 문은 이미 잠겨 있었고, 우리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형… 너무 추워.”
동생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떨렸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볏짚더미를 발견했다.
더미를 헤치고 동생들을 안으로 넣었다.
“조금만 참자. 곧 날이 밝을 거야.”
목소리는 떨렸지만, 동생들보다 먼저 울 수는 없었다.
볏짚 사이로 별빛이 들어와 작은 구멍마다 은빛으로 번졌다.
그 빛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가족을 제발 지켜 주세요.’
그 밤의 냉기와 별빛, 그리고 떨리는 숨결은 지금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얼음처럼 남아 있다.
관 속의 새벽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결국 서울을 택했다.
수도공고 시험에서 떨어진 뒤, 갈 길은 더 이상 남지 않았다.
형이 일하던 덕소의 목공소로 올라가며, 나는 또 한 번의 겨울과 마주했다.
겨울밤, 본드가 얼지 않도록 불을 지피던 날이었다.
땔감은 떨어지고,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
“이러다 얼어 죽겠네….”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이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작업장 구석에 놓인 관 하나를 보았다.
누군가 주문했지만 아직 찾아가지 않은, 새 나무 냄새가 나는 관.
잠시 망설이다가 관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몸을 집어넣었다.
안은 희한하게 따뜻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고요했다.
‘그래… 이게 내 인생 같구나.
살아 있으면서도, 세상은 이미 나를 묻어버렸어.’
언제 잠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새벽, 관 뚜껑이 열리며 목공소 주인의 비명이 터졌다.
그 속에서 굳은 몸으로 웅크린 내가 있었다.
“야, 이놈아!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형의 다급한 목소리가 관 밖으로 흘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찬 공기와 함께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그리고, 나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아… 살았네. 아직 살아 있네.”
그 순간, 마음속 어디선가 작은 불씨 하나가 되살아났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죽을 만큼 추운 밤이 와도,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