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살아가기 시작했나
고등학교 방황의 끝은 어디인가
아버지의 술주정은 언제나 우리 가족의 고통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수군거렸고, 나는 그 시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럴 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 다짐은 무너지고, 나 또한 술에 기대는 날이 잦아졌다.
하교 후엔 집으로 향하지 않고, 이웃 동네 친구 집을 전전했다.
과음으로 울며 내 가정사를 쏟아놓은 적도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미워했고, 자책했고, 점점 무너져 내렸다.
어느 날, 동네 선배가 이유 없이 나를 때렸다.
대부분의 때와 달리 그날은 참을 수 없었다.
분노에 휩싸여 교련복의 요대를 감아 휘둘렀고,
쇠붙이에 맞은 선배는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을 학교로 모셔오라 하셨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결국 나는 매를 맞았고,
그날 수업 대신 연호정 정자에 앉아 소주를 들이켰다.
술에 취해 울다 쓰러져버린 그날의 저녁,
하늘은 유난히도 어두웠다.
고2 때 수학여행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했다.
친구들에게는 인생의 추억이 될 행사였겠지만
나에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도 수학여행을 가고 싶어 어머니께 졸랐지만,
아버지의 술값과 등록금이 더 급했다.
결국 어머니는 이웃집에서 돈을 빌려주셨고,
나는 그 돈으로 겨우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그 일로 아버지의 폭언은 더 거세졌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나는 재수를 했기에 친구들과의 벽도 느꼈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중학교 동창인 한 해 선배들과만 어울렸다.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고,
‘이럴 바엔 차라리 가지 말자’는 생각으로
수학여행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날, 가지 못한 학생들은 죽변 등대를 다녀왔다.
울진에서 멀지 않은 곳,
초등학교 시절 놀이터였던 바로 그곳이었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하얀 등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길을 잃은 누군가를 위해 묵묵히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등대가 되고 싶다.’
그 후로도 방황은 이어졌다.
나는 점점 내성적이 되었고,
집안의 무게를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그는 스스로 동네 이웃 할머니 집으로 옮겨 공부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과 동시에
이상한 힘이 내 안에서 피어났다.
‘나도 변할 수 있을까?’
그 물음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방황의 끝은 어디일까.
아마도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는 순간,
즉,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