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살아가기 시작했나
학창 시절의 장학금
우리 가정은 ‘정상적인 가정’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아버지의 문제로 집안은 늘 불안했고, 그 불안은 가족의 대화마저 앗아갔다.
큰형은 친척집으로, 작은형은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객지로 나갔으며,
집에는 나와 두 동생만이 남았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가족이 둘러앉아 웃으며 밥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생일파티도, 외식도, 함께 나눈 대화도 내 기억 속엔 없다.
그저 각자 살아내기 바빴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늘 돈을 구하러 다니셨다.
기성회비를 내야 하는 날이면, 등록금 납부일이면,
이웃집을 돌며 몇천 원, 몇만 원씩을 꾸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돈’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겁고,
가난이 얼마나 사람을 작게 만드는지 어릴 적부터 배웠다.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늘 부끄러웠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더 힘든 친구들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이 가난해 학교를 그만두고 객지로 떠난 친구,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취직한 친구를 볼 때마다
‘그래도 나는 아직 학생이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붙잡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중학교 때 두 번, 고등학교 때 두 번, 그리고 종친회 장학생으로 네 번,
나는 총 여덟번이나 장학생으로 추천되어 등록금을 면제받았다.
그때의 감사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장학금은 단지 학비의 지원이 아니었다.
‘너는 아직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세상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가난 속에서도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그 장학금 덕분이었다.
그것이 내게 준 것은 단지 돈이 아니라
존재의 위로와 인간에 대한 믿음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
나는 그 시절의 도움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군가가 나를 믿어주었듯,
나도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나마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다 갚지는 못했지만,
죽기 전까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시절 받은 따뜻한 마음의 빚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