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우리는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했다.

by 전병근

우리는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했다.


졸업 후 나는 모든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느릿느릿 고향에서 돌을 나르고 쌓는 일을 했다.

팔이며 허리가 매일같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그 육체의 고됨이 오히려 마음을 붙잡아주는 것 같았다.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마다 흙먼지 속으로 파묻어 버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병역을 해결하려면 5년 안에 3년의 해상생활을 반드시 채워야 했다.

그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이종사촌 형의 집에 얹혀 지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흐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오후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영애가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어디서 주소를 알아냈는지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그보다 먼저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빠… 걱정이 돼서… 정말 죽을 것만 같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오래 눌러두었던 죄책감이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영애는 울음 사이로 말했다.

처음엔 언니가 떠난 뒤 내가 무너질까 봐 찾아오고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칠 듯 뛰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더는 보지 못하면 정말 숨조차 쉬지 못할 것 같았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꺼내면 그 말이 그녀를 더 아프게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울기만 했다.

바람도 멈춘 저녁이었다.

“우린…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얼마나 울었을까.

겨우 입을 떼어 말을 꺼냈다.

“영애야…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우린 뭔가 죄를 짓고 있는 거야.”

영애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오빠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부모님께도 우리 이야기 설명할 수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떨림 속에는 분명한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우리가 만나는 그건 괜찮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는 되면 안 돼. 그건… 아니야.”

말을 내뱉는 순간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잔인하게 만들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리 둘이 더 무너질 것도 알고 있었다.

상처가 되지 않게 끝내고 싶었지만 끝내지 못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마지막이라도 좋아요. 오빠가 말한 그 집… 보고 싶어요.”

그날 밤 영애는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이 되어도 좋아요. 오빠가 말한 고향 그 집이 어떤 곳인지 보고 싶어요.”

“오빠의 부모님은 어떤 분인지도…그냥… 알고 싶어요.”

그 말에서 나는 정리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느꼈다.

그래서 거절할 수 없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나의 고향, 울진으로 향했다.

창밖의 풍경이 서서히 산과 논으로 바뀌어 갈수록 내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운 좋게도 그날은 아버지가 술에 취하지 않은 밤이었다.

허물어진 기와집. 춥고 가난한 내 울진집에서 영애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셋이 함께 하루를 보냈다.

영애는 많이 웃었다.

어머니도 좋아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 웃음 하나하나가 마지막 불씨처럼 보였다.

밤이 깊을 즈음 나는 결국 말했다.

“영애야…이 여행은… 아마 마지막일 거야.

우리… 다시 만나더라도 연인이 되면 안 돼.”

영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강하게 붙잡고 싶은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외면하는 것이 그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말은 거의 없었다.

서로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말보다 더 큰 무언가가 가슴을 쳤다.

부산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영애는 잠시 멈춰 서더니 작게, 아주 작게 말했다.

“고마워요… 오빠.”

그리고 돌아섰다.

나는 끝내 그녀를 불러 세우지 못했다.

그 날이

영애와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이전 26화(26화) 졸업 후, 두 계절을 품고 방황하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