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살아가기 시작했나
졸업 후, 두 계절을 품고 방황하던 시절
졸업식 날, 모자를 던지며 웃는 친구들 틈에 서 있으면서도 나는 이상하리
만큼 고요했다.
네 해 동안 참 많이 버텼구나—
스스로 그렇게 어깨를 다독였지만 마음 한가운데에는 막연한 공허함이 깊
은 우물처럼 파여 있었다.
학교를 떠나는 순간, 언젠가 선명하다 믿었던 미래는 흐릿해졌다.
“해양대 나왔으면 뭐든 할 수 있다.”
선배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막상 세상에 부딪히니 그 말은 바다 안개처럼
쉽게 흩어졌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일이었다.
방 안의 작은 달력에는 빨간 동그라미만 하나둘 늘어갔고, 그 동그라미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의 계절은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아픈 이별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아픔은 끝나지 않았다.
졸업 후 몇 달 동안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부산과 고향 사이 어딘가에서 멈춰 서 있었다.
남포동 골목을 지나면 아직도 자매의 웃음과 울음이 잿빛 연기처럼 남아
있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묘하게 저릿해 왔다.
그 집의 두 계절—언니의 봄, 동생의 여름. 그 계절의 끝이 이미 지나버린
줄 알면서도 내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완전히 떠나오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면 조금의 술에도 마음은 금세 무너졌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나를 믿을 여유조차 없었다.
어떤 날은 바다 냄새가 나는 학교 쪽으로 발길이 가고, 어떤 날은 그냥 정
처 없이 버스를 탔다.
정류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만 이렇게 멈춰 있는 걸까?”
아무도 모르는 외로움 군입대를 피할 수 없었던 시절보다, 고등학교 마룻바
닥에서 자던 그 겨울보다 졸업 후의 외로움이 더 깊었다.
그때는 목표라도 있었다.
부서질지언정 붙잡아야 할 꿈이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그 목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는 그저 어른 흉내를
내는 청춘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 소식을 전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소리 없이 작아졌
다.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언제나 지쳐 있었고 어깨는 자꾸만 내려앉았
다. “괜찮다.”
스스로에게 말하면 그 말은 텅 빈 방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쓸쓸하게 들렸
다.
그러나 방황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계절을 위한 숨고르기였다.
어느 날, 부산항 근처 오래된 선착장을 혼자 걷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다음 길로 나아가기 전에 잠시 멈춰 숨을 고
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세게 불었고 정박해 있던 배들이 철썩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떠올랐다.
나는 흔들리는 것이 두려워 선원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더라도 나아갈 힘이 내 안엔 분명히 있었다.
방황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흔들려야 비로소 자신의 중심을 알게 된다.
그날 이후 나는 영애의 마지막 편지에서 배웠던 그 조용한 용기처럼 한 걸
음씩, 아주 천천히 나아갔다.
돌아보면 졸업 후의 방황은 인생에서 가장 길고, 가장 고독하고, 어쩌면 가
장 나다운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두 계절을 가슴 한편에 품은 채,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포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황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조금 더 사람
을 이해하게 되었고, 조금 더 빛을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