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마지막 항해가 나를 미치게 만들다

by 전병근

마지막 항해가 나를 미치게 만들다


나의 마지막 항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그 항해는 인천항에서 시작되었다.

출항 전부터 이미 마음 한켠에서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리라”는 예감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2등 기관사로서의 첫 승선이었지만, 설렘보다는 무거운 피로감이 앞섰다.

함께 일해야 하는 3등 기관사가 다른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경계하며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시작된 항해였다.

배는 오래되고 낡아 정비할 곳이 끝이 없었다.

인천에서 인도네시아까지 이어지는 항로는 길고 고달팠다.

적도를 지날 때면 기관실의 온도는 46도를 훌쩍 넘겼다.

그 뜨거운 공간 속에서 발전기를 정비하며 흘린 땀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으로 바뀌곤 했다.

인도네시아 항에 도착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낮에는 정비에 매달리고, 외출은 언제나 해가 진 뒤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술로 더위를 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신 술은 다음날의 더운 기관실에서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세 번째 항차였던 그 시절은 내 생애 가장 많은 기계 정비를 했던 시기였다.

기술적으로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세월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1등 기관사가 에어밸브를 교체하던 중, 잔류 압축공기에 밸브가 튀어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급히 귀국한 그의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했던 사고는 다음 항차에서 일어났다.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항구에서 주기관 정비가 한창일 때였다.

3등 기관사가 장갑 낀 손으로 피스톤을 걸던 순간, 1등 기관사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크레인을 작동시켰다.

그 짧은 순간, 3등 기관사의 손가락 세 개가 후크에 끼어 잘려 나가고 말았다.

“악!” 하는 비명과 함께 붉은 피가 기관실 바닥에 흘러내렸다.

잘려진 손가락은 뼈만 남고 껍질이 매달려 있었다.

그 광경 앞에서 모두가 얼어붙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하지 못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깨끗한 천으로 그의 손을 감싸 부축해 갑판 위로 올라왔다.

앙카링 중이던 우리 배는 부두에 접안해 있지 않아 육상으로 연락을 취해도 스피드보트가 도착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결국 그는 잘려나간 손가락을 냉동 처리한 채 응급조치만 받은 상태로 항공편에 실려 귀국했다.

며칠 뒤 우리는 인천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끝내 접합 수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운 지방에서 사고를 당한 후, 추운 한국의 겨울로 후송된 탓이었을까.

그는 결국 손가락 세 개를 잃은 채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 끔찍한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한 나는 더 이상 바다 위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날 이후 ‘이 일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학교 5년 후배인 실습 기관사 한 명이 같은 배에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내가 배운 모든 것을 알려주며 짧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이어갔다.

가끔은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나의 마지막 항해는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후배는 나의 지도를 받으며 6개월간의 실습을 잘 마치고 리포트로 장학금까지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훗날 그의 소식을 들었을 때, 아직도 승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고단한 길 위에서 그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제와 돌아보면, 그때의 마지막 항해는 단순한 ‘일의 끝’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한 장을 매듭짓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다는 나를 미치게 만들었지만, 그 미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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