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용서의 의미

by 전병근

용서의 의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 나는 오랫동안 ‘용서’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으며 살았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를 원망했고, 피했고, 때로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의 끝에는 이상할 만큼 깊은 슬픔과 공허함이 남아 있었다.

그건 미움이 다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마음속에 남은 미완의 감정이었다.

나는 그것이 바로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라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다.

아버지는 평생을 술과 함께 보내셨다.

술이 없으면 하루를 견디지 못했고, 술기운에 가족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며 또 술을 찾았다.

그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공포로 남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웠고, 그 부끄러움이 곧 나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도 나이가 들고,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술은 단지 방탕의 흔적이 아니라, 그분이 세상과 싸우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피난처였다는 것을.

가난과 외로움, 책임감과 좌절, 그 모든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도 표현할 길이 없었던 사람.

그분의 분노는 사실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분의 침묵은 우리를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의 다른 얼굴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반세기가 걸렸다.

용서란 단순히 잘못을 잊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의 여정이었다.

이해가 되면 미움이 줄고, 미움이 사라지면 그 빈자리에 연민이 자리 잡는다.

그때서야 진정한 용서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의 부족함이 내 삶의 거울이 되어 주었다.

그 어둡고 거친 세월 속에서 나는 사람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배웠다.

아버지를 용서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숨기고 눌러왔던 내 안의 상처가 조금씩 빛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

대신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분이 내게 남긴 것은 상처만이 아니라, 그 상처를 이겨내는 힘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뇐다.

“아버지, 이제 모든 게 괜찮습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나도 나를 용서합니다.”

작가의 이전글(37화) 아버지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