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으로 바꾸자
인간의 인격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의 영향도 크지만, 그보다 더 큰 힘은 어린 시절의 환경에서 온다.
나의 학창 시절은 어려움과 불행 속에서 이어졌고, 그 환경이 계속 반복된다면 내 인생은 고난과 비참함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결혼을 하고 육상 근무를 시작하면서, 나는 비로소 그 “정체성의 혼돈” 속에서 조금씩 벗어나 새로운 인격의 방향을 찾아가고자 노력했다.
부모와 유년기에 만들어진 성격과 인격을 새로운 환경 속에서 깨닫게 되면서 새 세상을 향한 마음이 조용히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의 헬레니즘 사상은 인간의 마음과 인격을 중심에 두었다.
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고된 역경과 파탄난 가족사를 떠올리며, 그 속에서 형성된 우울함과 부정적인 마음을 걷어내고자 했다.
그 과정은 마치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분노와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굳어진 성격이 조금씩 해체된다는 것을 배웠다.
오디세우스가 긴 항해 끝에 자신을 되찾듯, 나 또한 분노와 절망을 넘어서
사랑과 깨달음의 항해를 시작해야 했다.
어릴 적의 미움과 분노를 버리고, 남은 인생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감추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것을 성장의 힘으로 바꾸어야 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인생의 필수 과정이었다.
그리스의 철학이 인간의 부정적인 면에서 이상을 끌어냈다면, 로마의 정신은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긍정의 힘을 발휘하며 현실을 이겨냈다.
나 역시 마흔을 넘기며 이 두 정신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인생은 허무하고 공허했다.
그러나 유럽의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면서 내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나는 깨달았다.
보존성과 해체성은 우주의 이치이듯, 인간의 마음에도 동일한 원리가 흐른다는 것을.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어 별이 되고, 결국 블랙홀로 사라지듯, 인간도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존재다.
억압된 마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나는 감정의 폭발 속에서 스스로를 잃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일부이며, 그 감정을 통해 나는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칸트는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의 세 가지 비판을 통해 인간의 인식이 성장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나의 유년기는 인격의 성장 단계가 부재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깨달음의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어릴 적 잠시 기독교의 품 안에서 마음의 기준을 세웠던 기억도 있다.
그 이후의 삶에서 신을 멀리했지만, 이제는 다시금 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하늘을 중심에 둔 우리의 전통처럼, 인간은 중심이 아니라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상대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로마의 역사가 오래 지속된 것은 긍정과 합리성, 현실주의와 개방성을 조화시킨 지혜 덕분이었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엔 버림받은 존재라 느꼈고, 부모를 원망하며 신을 원망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내 인생의 반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감추고 싶던 과거와 허물들을 드러내는 용기야말로 긍정의 출발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마음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며, 그 위에 긍정의 씨앗을 뿌린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내 안의 어둠을 긍정의 빛으로 바꾸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걸어온 길 중 가장 인간다운 여정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