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낙동강 합천보 공사를 수행하다

by 전병근

낙동강 합천보 공사를 수행하다

수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본격적인 4대강 공사가 시작되자 회사는 술렁였다. 짧은 공기, 여름 홍수철의 위험, 그리고 회장님의 “실패하면 끝이다”라는 단호한 말까지. 누구도 현장 소장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한발 물러서는 자리, 결국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럼 제가 하겠습니다. 다섯 현장을 동시에 맡겠습니다.”

순간 회의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가능하냐는 눈빛들이 나를 향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낙동강 합천보를 비롯해 다섯 개 현장의 총괄소장이 되었다.

합천보 공사는 파이프 트러스 수문을 윈치로 작동시키는 구조였다. 설계도면은 일본식 시방서를 그대로 옮겨놓은 불친절한 도면뿐, 세부 설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인천공장에서 제작된 자재는 공기가 급해 가조립도 거치지 못한 채 현장으로 왔고, 조립이 맞지 않아 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나는 다시 공장으로 뛰어다니며 제작팀과 머리를 맞댔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저 기둥 각도가 2도만 어긋나도 수문이 닫히지 않습니다.”

나는 도면 위에 몸을 구부리고 하루가 다 가도록 펜을 들었다. 공기가 빠듯해 숨이 막혔지만, 그럴수록 더 냉정해져야 했다.

설계 변경을 주장할 때는 더 큰 벽이 있었다. 일본 시방서대로 시공하라는 발주처 담당자의 완강한 태도였다. 나는 직접 수자원공사 본부를 찾아가 설계의 불합리성을 설명하며 한 줄 한 줄 설득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는 수십 번이었다.

어느 날, 자재팀이 내 계획과 달리 저가 업체에 발주를 내버린 일이 벌어졌다. 품질은 엉망이었고, 결국 업체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공사를 포기했다. 제작 중이던 자재는 압류되어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목포까지 내려가 새벽 어둠 속에서 제작품을 몰래 트럭에 실어 김해의 다른 업체로 보냈다. 그때 트럭 위에서 불어오던 겨울 강바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공사가 지연되며 수문 설치 시기는 한겨울로 넘어갔다. 낙동강 바닥의 냉기는 살을 에는 칼날 같았다. 얼어붙은 강 위에서 철판을 용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공기는 반드시 지켜야 했다. 나는 금강 현장에서 작업자들을 급히 내려오게 하고, 네 배의 인건비를 약속했다. 새벽 두 시, 그들과 함께 강바닥에서 용접불을 지피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조금만 더 버팁시다. 내일이면 끝입니다.”

손끝은 얼어붙어도,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혹한 속에서 일어난 수축 변형으로 수문 길이가 짧아지는 기술적 문제가 생겼지만, 다행히 재질이 일반 강재라 크랙은 없었다. 나는 또다시 설계팀과 밤을 새우며 해결책을 찾았다. 발주처는 여전히 시방서 준수를 요구했지만, 끝내 설득해냈다. 결국 공기는 지켰고, 저가 수주로 시작된 공사는 설계 변경과 기술 협의로 흑자로 전환되었다.

본사의 인건비 추가 결재는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 모든 비용을 내 선에서 해결했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책임은 결국 나의 몫이었다. 그저 ‘끝까지 해냈다’는 자부심 하나로 마음을 달랬다.

그 시절, 합천보 현장에서 가장 큰 위안은 부곡의 허름한 온천 모텔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면, 굳었던 근육이 서서히 풀렸다. 싸늘한 강바람 속에서도 다음날 다시 일어설 힘이 거기서 생겼다.

그렇게 공사는 마무리되었다.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았던 현장이었지만, 나는 두려움 대신 책임을 택했다. 그 한 번의 선택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목표를 정하면 최선을 다하라.”

그 단순한 신조가, 혹한의 강바닥 위에서도 나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제 그때를 돌아보면, 공사의 성패보다 더 소중했던 것은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현장에서 배운 인생의 공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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