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함안보 공사를 수행하다
함안보 공사는 4대강 사업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공사였다. 공기는 짧고, 구조물은 복잡했으며, 무엇보다 라이징섹터 타입 수문이라는 고난이도의 설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공사를 맡으며 곧 깨달았다. 기술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것을.
제작업체 선정 과정에서부터 난관이 닥쳤다. 회장님의 안면이 있는 업체가 지정되었고, 제작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공기는 점점 밀리고, 직원들은 회장님의 눈치를 보느라 강하게 밀어붙이지도 못했다. 매일같이 밤늦게 인천공장으로 향하던 길, 나는 불 꺼진 공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곤 했다.
“이래선 도저히 기한을 맞출 수 없다.”
퇴근한 작업자들 대신, 나는 혼자 공정을 지켜보다가 다음 날 제작소장을 불러 세웠다.
“회장님께서 아는 업체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늘부터 철야작업을 하세요. 끝날 때까지.”
목소리가 터져라 외쳤다. 그날 밤, 서로 고함이 오가며 공장은 싸늘하게 식었다.
결국 그 소식은 협력업체 사장을 거쳐 회장님께까지 전해졌다. 불려가면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다행히 그 후 공정은 조금씩 속도를 냈고, 결국 제작은 끝을 보았다.
설치가 시작된 것은 한겨울이었다. 낙동강의 바람은 칼처럼 매서웠고, 철판은 손끝에 닿기만 해도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러나 협력업체의 노력과 플랜트, 조선 부문에서 온 숙련된 직원들의 헌신으로 공사는 서서히 길을 찾았다. 밤샘과 싸움, 끝없는 수정 속에서도 결국 구조물은 우뚝 섰다.
그 무렵, 나는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합천보 현장을 챙기다 밤을 새우고, 새벽이면 함안보로 향했다. 수자원공사 담당자의 전화는 한밤중에도 울렸다. 새벽 1시, 2시, 잠결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몸이 움찔거렸다. 그때부터였다. 전화벨 소리가 듣기 싫어 매일 벨소리를 바꾸던 때가.
합천에서 함안으로 가는 길목, 마른 언덕 위의 묘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저기 들어가 편히 쉬고 싶다.’
그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곧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도망칠 때가 아니라 버틸 때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어느 날, 수자원공사 담당자와 함께 일본 교토로 견학을 갔다. 그곳에서 실제 라이징섹터 수문을 보며, 나는 기술의 완벽함보다 사람의 치열함을 느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기술자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어야 한다.”
공사는 끝내 흑자로 마무리되었다. 일본 제철소 재질이 포함된 설계도에서 나는 이미 설계변경의 가능성을 예상하고, 품목 단가를 전략적으로 조정해 두었다. 예상대로 포스코 재질로 변경되면서 공사비는 크게 상승했고, 협력업체도 적자 없이 공사를 끝냈다. 그때의 판단은, 경험이 아닌 ‘감각’이었다.
설치 과정에서의 신공법은 회사 내부에서 최우수 신공법상으로 선정되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낙동강 물결을 바라보았다. 얼음 밑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사람의 의지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러야 하는 법이다.
그 시절, 나는 매일이 전쟁 같았지만 동시에 배움의 연속이었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이었고, 책임보다 더 강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때의 함안보를 떠올린다. 차가운 강바람 속에서 흔들리던 내 그림자가, 어느새 가장 단단한 나를 만들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