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죽음이 나를 성장시키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장례식장을 걸어 나왔다. 건물 위로 스며드는 석양빛은 유난히 붉었다. 마치 오래 참아온 눈물을 대신 흘려주는 듯, 하늘은 서늘한 침묵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어머니의 나이는 겨우 일흔여섯.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너무 짧았고, 견뎌온 고통에 비하면 너무 허무한 이별이었다. 나는 내 어린 시절부터 이어지던 어머니의 숨소리를 기억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밤새 기침을 삼키던 그 모습이,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처럼 희미하게 흔들렸다. 젊은 시절부터 이어진 화병과 기관지 천식은 어머니의 삶을 한 번도 편히 놓아주지 않았다.
어머니의 인생은 늘 숨이 차 있었다.
아버지의 술기운 아래 뒤엉킨 밤들, 깨지고 뒤집힌 밥상, 살림살이의 사소한 흔적까지 다 정리하고도 남은 상처들. 어머니는 마을의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연탄 배달, 오징어 손질, 품팔이, 남의 집일. 작은 체구로 맞서는 세상은 항상 그보다 컸고, 더 차갑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결코 등을 돌리지 않았다.
자식들 생각에 수십 번이나 집을 뛰쳐나갔다가도,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 문을 열 때의 표정이 얼마나 쓸쓸했는지 나는 이제야 이해한다.
나는 그 모든 무게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멀리 인천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 없다는 핑계로, 지친다는 핑계로… 나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않았다.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말을 듣고도 병원에 모셔갔던 것은 몇 번뿐이었고, 그마저도 의사가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말을 전해주자 내 마음은 곧 무뎌졌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느 날 스스로 삶의 문을 닫아 버리셨다.
독한 농약을 들이켰다는 소식은 내 몸의 피를 한순간에 얼려버렸다.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 병간호 신세를 지기보다는, 더 이상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 선택이 얼마나 외로운 길이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가슴이 미어졌다.
자식이 준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두었던 통장을 보았을 때, 나는 더 무너졌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셨다.
나는 그 마음에 어떤 보답도 하지 못한 채, 뒤늦게 울기만 하는 불효자였다.
더 슬픈 일은 또 있었다.
“죽으면 절대 아버지 옆에 묻지 말아다오.”
어머니는 생전에 그렇게 누누이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친척들의 말에 눌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나면 가슴 한 켠이 비어지는 듯 아리다. 언젠가 나도 당신 옆으로 가는 날이 오면, 그때만큼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내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어머니의 고단했던 한숨, 억척같던 손, 가쁜 숨결 속에서도 자식들을 바라보던 그 시선이 내 삶의 중심을 바꾸어버렸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어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상처였지만, 동시에 성장의 문이었다.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조금 더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조금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배웠다.
지금도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머니가 웃으며 바라보고 계신 듯하다.
나는 그 웃음이 내가 살아갈 이유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어머니, 이제는 가시밭길이 아닌 꽃길만 걸으시길.
당신이 남긴 사랑의 무게만큼, 나는 앞으로의 삶을 더 깊게, 더 따뜻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뵈러 가는 날이 오면
이 말 한마디 꼭 전하고 싶다.
“어머니…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사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