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의식을 끝까지 가져라
경인 아라뱃길과 4대강 현장을 총괄하던 시절, 나는 매일 새벽 물안개가 걷히기 전 공사장을 걷곤 했다. 강바람은 늘 습하고 차가웠지만, 그 냉기 속에는 내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섞여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었고, 땀과 실수와 배움을 겹겹이 쌓아 현장을 완성해 냈다. 그 결과 쏟아진 상들은 마치 나에게 주어진 작은 위로 같았다. 국무총리상, 우수사원상, 최우수 현장상… 그 모든 상패 속엔 내 이름뿐 아니라 함께 버텨낸 사람들의 얼굴이 비쳤다.
그 시기, 회사는 극심한 불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맡은 다섯 개의 현장은 회사 수익의 절반을 책임졌다. 사장님은 그런 나를 끝까지 신뢰했고, 마침내 임원으로 승진시키며 별도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하나의 의리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승진이 내 퇴직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임원’이라는 이름보다 더 큰 ‘책임의 의미’를 배웠기 때문이다.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발령이 났을 때, 나는 어쩐지 오래전 바다 위에서 흔들리던 기억을 떠올렸다. 선상생활을 할 때 느꼈던 외로움과 막막함이 다시 밀려왔다. 처음부터 마음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약했다. 하지만 발령장을 받은 순간, 마음의 단추를 한 칸 단단히 잠갔다.
“가기로 한 길이라면 끝까지 책임지자.”
수빅조선소는 태생부터 바람이 거셌다. 창공을 찌르듯 서 있는 크레인은 겉모습만 위풍당당했을 뿐, 내부는 늘 적자였다. 낮은 인건비를 기대하고 지은 조선소였지만, 생산성은 하루가 멀다 하고 뒤처졌다. 기술도, 품질도, 무엇 하나 순탄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필리핀 특유의 장마비와 예측할 수 없는 날씨는 조선업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수익은 바닥을 맴돌았고, 회사는 부동산을 팔아가며 버텼다. 그런 날들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조선소는 숨을 헐떡였고, 나는 그 숨을 함께 세어가며 버티고 또 버텼다.
필리핀의 생활은 단조롭고 고독했다. 퇴근 후 창밖을 바라보면 유난히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오늘도 하루를 버텼다’고 말해주는 듯한 빛이었다. 나는 그 빛에 기대어 매일 아침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은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임원 수를 줄이고 구조조정이 단행되던 날, 나는 담담하게 퇴직서를 받아 들었다. 25년의 시간은 길었지만, 인생의 전체를 놓고 보면 여전히 젊은 나이였다.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하게도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는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할 시간인가.”
회사를 떠난 뒤 몇 해 지나지 않아, 결국 수빅조선소도 문을 닫았다. 크레인 사이로 바람만 스쳐 지나가던 그 공장도, 수많은 땀과 희망을 품었던 그 부지도, 마침내 사람의 발자국이 끊긴 채 잿빛 폐허로 남았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묘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슬픔인지 허무인지, 혹은 오랜 무게를 내려놓는 안도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모든 힘을 다해 책임을 다했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책임이란, 반드시 누가 알아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바람처럼 스쳐가고, 때로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러나 책임을 선택하는 마음 자체가 나를 지탱했고, 나를 성장시켰다.
나는 그렇게 깨달았다.
책임이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한 방향이다.
그 방향을 따라 걸어온 지난 시간들은 지금도 내 삶의 기둥처럼 서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그 기둥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