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역사의 꿈은 아직도 꿀 수가 없다
승선 생활 3년 6개월, 그리고 육상에서의 스물다섯 해.
그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바다와 육지를 번갈아 디디며 한 회사의 부표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육지로 밀려온 작은 파도처럼 퇴직을 맞았다.
퇴직 통보를 받았던 그날, 마음 한구석은 묘하게 가벼웠고, 또 다른 한구석은 발 디딜 곳을 잃은 듯 막막했다.
오랫동안 좁은 복도와 사무실의 공기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자유가 주어지는 순간 오히려 방황을 시작하게 되는 법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몇 달은 그저 쉼이라는 선물을 마음껏 누렸다.
그러나 가장의 책임은 조용한 발걸음으로 다시 내 앞에 서 있었다. 생활의 무게보다 더 무거웠던 것은 ‘목표를 잃은 하루’였다.
기상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달콤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가 나를 향해 묻는 질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분이었다.
“오늘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직장을 떠나자 관계도 함께 떠났다.
일과 얽혀 있던 전화번호들은 어느새 의미를 잃었고, 휴대폰 속 80%의 인맥은 천천히 잿빛 기억으로 변해갔다.
연락이 줄자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맑은 평일 하늘 아래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죄를 짓고도 아무 일 없는 듯 지내는 사람처럼 불편했다.
모임에 나가도 예전만큼 반갑지 않았고, 사소한 말에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바둑판 앞에 앉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혼자 산길을 걸으며 괜히 숨을 고르고, 때로는 도서관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텅 빈 마음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의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그 무렵, 퇴직 후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들렸다.
그때는 그들이 왜 실패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도 곧 그 길을 걷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대학가 근처의 ‘좋은 위치’라는 상가를 소개받았고, 현장에 가보니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전문성도, 경험도 없었지만 이상한 자신감이 나를 밀어붙였다.
자료를 모으고, 발품을 팔고, 결국 체인점을 열었다.
오픈 초기 두 달은 순풍이 불었다. 매출도 조금씩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상승은 오래가지 않았다.
광고도 하고, 학생회장을 만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원가 구조를 다시 들여다본 순간, 알 수 없는 서늘함이 등에 흘렀다.
아무리 잘 팔아도 남지 않는 장사.
인건비, 재료비는 매출이 오를수록 더 큰 적자를 요구했다.
방학이 되자 손님은 거의 끊겼고, 점포 안에는 바람만 드나들었다.
나는 어느새 깊은 수렁 앞에 서 있었다.
발버둥칠수록 더 빠져 들어가고, 빠져나올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8개월 만에, 퇴직금만 날린 채 사업을 접었다.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는 마치 내 안의 또 다른 희망이 천천히 닫히는 소리 같았다.
그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직은 새로운 역사의 꿈을 꿀 수 없는 때라는 것을.
언젠가 다시 문이 열리는 날이 오리라는 희미한 바람을 가슴 한곳에 남겨두면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다음 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