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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도훈 Dec 21. 2020

글쓰기는 의식(儀式)이다.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해요. 청소년기의 기본적인 기초소양과 역량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독서와 글쓰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폭 넓게 해주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다지는 것이지요.

경험이 풍부한 농부는 농사일을 하는 때를 훤이 알고 있습니다.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독서나 글씨기도 처음에는 서투르지만 계속하다보면 전문적인 식견과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글쓰기라고 생각 합니다.



그럼 글쓰기에 대해 편하게 얘기해 볼까요?

저는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글쓰기 전에 자기만의 준비된 의식(儀式) 절차가 있다면 어떨까요? 글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글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면 당연히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왔어요.


그래서 글쓰기에는 자신만의 정해진 격식이나 방식인 의식(儀式) 절차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의식(儀式)은 일종의 루틴(Routine)이라고 할 수 있죠. 루틴(Routine)은 특정한 동작이나 일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 경험상 글쓰기 전의 의식(儀式)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제 경우는 항상 공부방부터 청소를 합니다. 간단히 쓸어 주고 책상과 책꽂이의 책들을 주제별로 공부목적에 맞게 가지런히 정리를 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글쓰기의 1차 준비가 끝나게 됩니다. 이어서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주는 5분 정도의 스트레칭을 하죠. 스트레칭을 어렵게 생각하진 마세요. 그냥 몸을 쭉 펴거나 굽히면서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면 되는 것이 맨손체조니까요. 


이 때, 글쓰기가 잘 될 것이라는 자기 암시를 곁들여주면 효과는 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전에 없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요. 이 때가 비로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두 번째 준비를 마치는 단계랍니다.


이제 마지막 준비 단계로 연필과 연필을 깎는 주머니 칼이나 커터 같은 칼을 준비합니다. 연필은 제가 좋아해서 주로 사용하는 필기구입니다. 연필을 왜 좋아하느냐구요?


연필은 특유의 부드러운 필기감과 나무 냄새가 어릴 적 향수와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죠. 연필을 깎을 때, 전통 연필깎이나 휴대용 연필깎이를 이용하면 쉽고 빠르게 깎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연필은 손으로 직접 깎아 쓸 때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필기구에요.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의 의식(儀式)이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지요. 유럽에서도 요즘 연필이 필기도구로써 새롭게 각광 받고 있는 것은 연필만이 갖고 있는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필기도구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랍니다.


글 쓰는데 무슨 절차가 이리도 복잡해! 라고 불평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필기구가 연필이고, 연필이 가장 인간 친화적인 글쓰기 도구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세요. 여러분이 조금 천천히, 느리게 집중해서 연필을 다듬어 보세요. 연필이 무엇인가 특별한 사람을 만들어 줄 것 같은 느낌이 드실 겁니다. 서양에서 연필 같은 필기구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의 글쓰기는 정신연마, 학문정진, 진충보국 같은 자세로 필기구를 사용했습니다.


거기에는 바로 문방사우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문방사우(文房四友)는 옛 선비들이 늘 곁에 두고 학문과 인격수양의 필수 도구인 4가지의 문방용구(文房用具)인데요. 문방사보(文房四寶)라고도 부르지요. 화선지, 붓, 벼루, 먹 이 4가지의 문방구를 의인화해서 가리키는 말이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합니다. 옛 선비들은 글을 쓰기 전 지극한 정성으로 벼루에 먹을 갈았어요. 먹을 갈면서 어떤 의식(儀式)을 가졌을까요? 최고의 글을 쓰기 위한 최선의 의식(儀式)은 글은 정신이다 라는 자세였습니다. 선비가 벼루에 먹을 가는 동안에 이미 마음속에서는 글이 써지고 있었든게 아니었을까요?


추사체(秋史體)하면 김정희가 떠오르시죠. 추사체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의 명필(名筆) 추사(秋史) 김정희. 김정희는 “70 평생 동안 벼루 10개를 밑바닥까지 닳아 구멍 뚫리게 했고, 붓 1천 자루는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유배기간 동안에도 치열한 서체연구를 통해 독창적인 추사체(秋史體)를 탄생시킨 김정희,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추사체를 완성시켰고, 문방사우(文房四友)는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문방용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연필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연필을 손에 잡고 손칼로 깎아 낼 때의 느낌은 선비가 벼루에 먹을 갈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무엇인가 신성한 의식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 또 다른 나를 발견한 것 같은 마음이 들지요.


연필을 깎을 때면 칼, 연필, 양손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연필을 깎아 본 사람들은 잘 압니다. 연필을 쥐고 나무살을 조금씩 일정하게 깎아내고 연필심을 뾰족하게 다듬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수고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연필을 깎아 보세요! 연필을 깎아내면서 제일 먼저 느껴지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여러분의 기대감이 서서히 올라간다는 느낌일 것입니다. 마치 활 쏘는 궁수가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지도 않았는데 느끼는 미세한 설레임과 긴장감 같은 것 말입니다.


연필 깎는 양손가락으로 전해지는 팽팽하고 야릇한 긴장감은 연필을 깎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묘미입니다. 손칼로 깎아내는 연필은 글쓰기에 대한 의욕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도 서서히 줄어들게 합니다. 오히려 글쓰기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연필깎이의 마무리는 원뿔형 속에 까만 연필심이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마치게 됩니다. 다 깎은 연필을 들여다 볼 때의 느낌은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의 “심봤다!”라는 외침소리가 절로 튀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지요


저는 연필심을 비교적 가늘고 뾰족하게 깎아 쓰는 편이에요. 손칼로 연필심을 다듬을 때의 사각거리는 소리는 겨울 밤 눈 밟는 사각거리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아니면 모짜르트의 디베르토멘토를 감상할 때의 상쾌함이라고나 할까요. 


까맣게 빛나는 뾰족한 연필심은 세상의 모든 의문에 답해줄 것 같은 무기처럼 보이는 것이죠.

이제 평소에 쓰고 싶은 글을 연필과 함께 생각 닿는 대로 써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글은 의식과 자유로움 속에서 쓰고 써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전의 의식(儀式)은 나만의 글쓰기 방식입니다. 

정리해보면 간단하죠.


첫째, 방 청소와 책상 정리 그리고 주제별로 자료 분류

두 번째,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키는 5분 동안의 스트레칭

세 번째, 연필깎이는 글쓰기 생각을 정리하고 주제를 명료하게 하는 의식

네 번째, 칼을 다룰 때는 베일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서 깍을 것


늘 항상 일정한 루틴(Routine)을 지키는 의식(儀式)은 집중할 수 있는 글쓰기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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