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BTI를 싫어한다. 요즘 술자리나 모임에서 MBTI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나는 싫다. 그렇다고 MBTI를 처음부터 배척했냐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스몰토크 용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해 왔다. MBTI에 대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뿐이지. 그러나 내가 MBTI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있다.
얼마 전 모임에서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T인 사람이랑은 연애 안 할 거야"
MBTI로 사람 거르는 인간유형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은 들었지만 현실세계에서 직접 만나보니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그 모임에선 해당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MBTI는 과연 믿을 만 한가? 사실 나는 위에도 서술했듯이 MBTI를 절대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스몰토크용으로, 모임의 분위기를 달구기 위한 소주제 정도였을 뿐이다. 내가 MBTI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사실 MBTI가 아니다.
우리가 MBTI라고 부르고 있는 검사는 보통 16Personalities 사이트에서 받은 무료검사일 것이다.(애초에 MBTI는 유료검사다) 해당 사이트는 MBTI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16Personalities는 사실 Big 5 검사 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공식 홈페이지에도 기재되어 있는 사항인데, 분명히 본인들은 MBTI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두고 있으니 참고 바란다.(한국어 페이지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내용)
https://www.16personalities.com/articles/our-theory
해당 검사는 MBTI가 아니라고 MBTI 연구소 측에서 입장까지 표명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lG_5V1I2fk
그런데 사람들은 성격유형별 설명은 MBTI를 참고한다. 해당 검사는 MBTI가 아닌데 설명은 MBTI를 참고하는 것은 말하자면 수학교재를 영어교재 답안지로 채점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닌가?
2. 그렇다고 MBTI가 정확하지도 않다.
MBTI가 비전공자들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MBTI의 개발자들은 심리학자가 아니며 둘 다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검사의 신뢰성에 그들의 전공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전공자든 아니든 검사 그 자체가 정확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렇지만 현대 심리학에서 MBTI가 진지하게 쓰이지 않고 있다고 하며, 보통 심리검사를 받으러 가면 MBTI의 경우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3. 요즘은 진짜로 차별에 사용되고 있다.
전술했듯이 특정 MBTI와는 연애 안 하겠다는 사람부터, 아예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은 거르겠다는 사람까지 만나본 나는 MBTI에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리검사를 통해 특정 성향인(특정 성향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애초에 부정확한 검사니까)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정말로 21세기 우생학이며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뉴스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요즘은 MBTI를 채용에 활용하기도 한다더라. 그런 건 인적성 볼 여력 없는 회사의 지리멸렬 일 뿐이다. 애당초 정확하지도 않은 10분짜리 무료검사로 사람을 거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될뿐더러 내 기준으로는 참 한심하다.
4. 사람을 보지 않고 MBTI를 보게 된다.
MBTI에 익숙해지게 되면 자연스레 MBTI에 사람을 맞춰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너는 P인데 왜 계획적으로 행동해?"
"F인데 왜 공감 못해주냐?"
"나는 너 인싸여서 I 아닌 줄 알았어" 등
특정 MBTI라고 해서 한 가지 행동패턴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T도 공감해 줄 때가 있다. I도 외향성을 띨 때가 있고, P도 계획적일 때가 있다. 사람은 원래 입체적이다. 그 사람의 행동은 그날의 기분, 감정,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MBTI가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로써 등장하게 되면서, 사람 자체를 억지로 특정인의 MBTI에 끼워 맞추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을 판단하려면 MBTI를 봐선 안된다. 그 사람 자체를 봐야지.
MBTI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혹자들은 그냥 재미로 보는 건데 뭐 이리 진지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MBTI가 특정성향을 차별하고 특정인을 판단하는데 그릇된 도구로써 사용된다면 MBTI 자체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은 결코 가벼운 것이 못된다. 그렇다고 사석에서 MBTI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여 분위기를 망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이 열풍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