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퇴원
어제의 다학제진료 결과가 아직 채 실감도 나기 전에 퇴원 얘기가 나왔다. 수술의 상처는 아물어가지만 마음의 상처는 이제 막 모습을 드러냈는데 병원에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3주간의 시간 동안 불어닥친 감당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채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우린 병원비 계산을 위해 원무과에 다녀오고 여러 보험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느라 분주한 오전을 보냈고 이내 짐꾸러미를 챙겨 병실을 나섰다.
“대체 지난 3주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동안 난 위가 없는 사람이 되었고 암환자로 등록이 되었고 항암일정을 조율해야 했으며 팀 내 최연소 LE를 맡으며 이끌었던 미국프로젝트를 내려놔야 했다.
문뜩 29살에 취업을 하여 서울에 처음 올라왔던 순간이 생각났다. 당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면 늘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오곤 했는데 버스가 서울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지방 사람들에게 반포자이라는 이 아파트는 마치 서울의 위용을 상징하는,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보였었다. 어떤 이들에겐 닿을 수 없이 높은 문턱처럼 보였을 이 서울의 마천루는 내겐 서울에서 이뤄내야 할 목표였으며 때때론 너무나 빛나게 반짝여서 더 이상은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그건 존재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인이에게 ‘오빠가 마흔 전에 저 아파트에서 살게 해 줄게’라며 허세 섞인 약속을 하곤 했는데 고맙게도 그때의 해인이도 지금의 해인이 처럼 이런 나를 웃으며 받아주고 응원해 주고 있었다.
젊음의 패기와 열정이 가득했던 20대를 뒤로하고 우린 조금씩 스스로의 색깔을 만들어 내며 빛나고 있었다.
그 후 15년의 시간 동안 난 열심히 일했고 플랜트 엔지니어로써 정점까지 성장했다. 좋은 회사, 좋은 평판, 최연소 파트장, 높은 연봉과 잘 준비되고 있던 연금계획 그리고 반포자이는 아니었지만 우리 딸을 좋은 여건에서 키울 수 있는 집을 서울에 마련했다.
회사에서 나의 가치를 높이는 동안 재테크나 가정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물론 몰입이 필요한 순간엔 어느 한쪽의 희생이 필요한 시기도 있었지만 곧잘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해 왔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균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일찌감시 깨달았다. 그리고 남들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시작한 운동은 어느새 일상이 되있었다.
잘 짜인 루틴 속에서 긴장감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중간중간에 크고 작은 도전들도 추가해 가며 나는 매년 성장했다. 회사 지원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대학원은 어느새 3번째 학기에 들어갔으며 크고 작은 부동산 투자를 하며 생긴 지적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작년 말에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회사에서 승진이란 보상을 받았는데, 이는 여러 부수적인 도전에서 오는 대체적이 성취감이 아닌, 메인 커리어가 잘 성장해 왔다는 반증이었기에 나는 누구보다 기뻐했고 스스로를 격려했으며 자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30대 초반에 세웠던 대부분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그 충만한 자존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이 모든 퀘스트를 달성하고 오사카로 떠난 연말 휴가에서 나는 사과로 가득 찬 온천탕을 즐기며 그 충만한 기분을 만끽했고 실제로 아무도 없는 새벽의 야외온천에서 “Oh yes! I deserve it!!! ”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입 밖으로 내뱉었다.
삶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 큰 달콤함을 맛본 탓일까?
25년 새해가 시작된 후 난 갑자기 그동안 나의 일상을 지지하고 있던 모든 부분에서 허무함을 느꼈다. 일은 시시해 보였고 또 다른 10년을 준비할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일은 지지부진했다. 이는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겪는 나도, 지켜보던 해인이도 모두에게 적지 않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5개월 정도가 지난 후 어느 날 해인이에게 불쑥 꺼낸 한마디는 “나 휴직을 좀 할까 봐. 먼가 목표의식이 사라진 느낌이라 일상에 집중하기가 어렵네”
였다. 그동안의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해인이는 흔쾌히 내 생각에 동의해 주었다.
“오빠 그것도 좋은 생각인 거 같아. 오빠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면 어딜 다녀와도 좋고, 같이 휴직을 하고 셋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무엇보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닐 거 같아 “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명쾌한 답변.
이내 조금 남았던 국그릇을 들이키며 들리지 않는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역시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야 “
이 무렵 꽤나 화제가 되었던 뉴스가 있었는데 현대자동차 그룹의 정의선 부회장님이 백악관에서 미국에 제철소를 짓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에 환호하는 트럼프의 모습은 모든 뉴스의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제철소 설계의 리더로 임명되었다. 최연소 LE(Lead Engineer)의 파격적 선임은 조직 내에서도 화제였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굉장한 도파민이었다. 그것은 그동안의 Burn-out을 한 번에 날려버릴 만한 새로운 동기부여이자 내 커리어의 2막의 화려한 시작인듯 했다.
그리고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내 몸에서 조금씩 이상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던 것은.
“5개월의 길었던 슬럼프가 막 끝나가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