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어도 더 나아가고 말테야.

[ep-3] 가벼운 위통

by Rick

최근 몇 개월간 약간의 소화불량이 있다 없다 했었는데 마침 정규 건강검진이 잡혀있어 지켜보고 있었다. 그 후 건강검진 위내시경에서 경미한 위염소견이었고 나 또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외 혈액검사를 포함한 모든 검사에서 나는 100점짜리 결과지를 가진 건강한 40대 남성이었다.


처음 찾아온 묘한 위통은 건강검진 후 2주가 지난 시점에서였다.


묘한 위화감과 함께 시작된 이 증상은 처음엔 식사량이 적정량을 넘으면 위가 조금 아프다고 느끼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지도 않았고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과식을 하지 않게 하니 좋은 점도 있다고 까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갔고 우연히 올라간 체중계에서 먼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머야 5kg가 빠진 거야? “


바로 집 근처에 복부초음파와 내시경이 당일 가능한 내과를 찾았고 연차를 내고 병원에 갔다.


”초음파는 깨끗하고요. 근데 내시경 상 위염이 굉장히 심해요. 아마 헬리코박터에 의한 급성 비후성위염 같아요. 혹시 몰라 조직검사도 여러 군데 했으니 일주일 후에 결과 나오면 제균치료하시면 됩니다 “


내가 의사는 아니었지만 한 달 전 건강검진 당시의 내시경사진과 지금 내시경 사진이 많이 다른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혹시 머.. 암 이런 거 일 수도 있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요”

“한 달 전 건강검진 때는 괜찮았다고 들었는데 한 달 사이에 위가 이렇게 되기도 하나요?”

”그러니까 빨리 제균치료를 하셔야 합니다 “


의사의 단호하고 짧은 한마디에 안심하고서야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때 의사가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이후 나는 헬리코박터 양성확정을 받았고 10일간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먹으며 제균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제균치료가 끝나갈 무렵 나를 괴롭히던 기분 나쁜 위통은 사라졌다.


하지만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는데 ‘Early satisfy’ 즉 조기 포만감 증상이었다. 평소에 먹는 량의 절반정도만 먹으면 이상하게 배가 부른 증상이었는데 해인이에게 우스갯소리로 “나도 안 맞아봐서 모르긴 하는데 요즘 유행하는 위고비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절대 살이 찔 수가 없겠는데!”라고 할 만큼 신기하게 금방 배가 부르고 또 금방 배가 고팠다.


때마침 여름휴가 중이었는데, 조식뷔페부터 다양한 코스요리까지 산해진미가 즐비한 그곳에서 여름휴가 내내 많이 먹지 못하는 것은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여름휴가 마지막날 밤은 제균치료가 끝나는 날이었는데 참았던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다시 병원에 가봐야겠어 “

휴가의 마지막날 밤이었다.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집 근처 내과에 다시 찾아가 다짜고짜 내시경과 조영증강 CT를 찍어보고 싶다고 요구했다. 얕은 지식으로 찾아본 결과, 위에 문제가 있다면 이 두 가지 검사에서 발견되지 못할 확률은 0%에 가까웠다. 생각보다 내과 전문의 원장선생님의 반응은 시원시원했는데,


“좋아요 환자분도 원하시고 저도 경과를 관찰하고 싶으니 오늘 응급으로 내시경과 조영증강 CT를 찍어보고 결과까지 같이 보고 돌아가시죠”


이 최근에 개업한 건강건진센터까지 같이 운영하는 내과는 각종 검진에 필요한 모든 의료장비를 다 보유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빨리 검사하고 빨리 결과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2개월간 정규건강검진을 포함해 3번의 내시경과 1번의 CT, 2번의 복부초음파, 2번의 피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끝나고 결과를 상담하는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위암이 보만이라는 사람의 분류체계에 따라 보만 타입 1~4까지로 분류되고 내 경우, 증상과 검사소견이 보만타입 4와 감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내시경상 소견이고요 CT상 보만타입 4를 특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조직검사 6군데도 다 음성이고요. 이 경우에는 헬리코박터로 인한 심한 위염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2달 후에 다시 검사를 해서 차도가 있는지 보는 게 좋을 거 같으니 예약 잡아 드리겠습니다”


몇 주 전에는 암은 아니라고 하더니 오늘은 암일 수도 있다고 하고 근데 2달을 그냥 지켜보자고 하는 이 젊고 성공해 보이는 내과 전문의의 앞뒤 안 맞는 말은 그래도 비교적 설득력 있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나 또한 그리 의심을 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해인이에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는데 “오빠 그 정도 얘기까지 들은 거면 대학병원에 한번 가보는 게 맞는 거 같아”라는 말에 “괜찮을 거 같다는데 귀찮게 대학병원까지?”라며 반문했다.

대답을 하자마나 그동안 이렇게 많은 검사를 자청해서 해 놓고 그걸 귀찮게 느꼈다는 나 스스로에게 조금 놀랬는데, 그 사실을 인정할 새도 없이 해인이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고, 대학병원 4군데에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다행히 늦지 않게 외래를 잡을 수 있었다.

종합검진에서 경미한 위염 진단을 받은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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