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는, 처음부터 달팽이는 아니었다. ‘쑥쑥이’였다가 ‘함토리’였다가 ‘개구리’였다가 ‘다람쥐’를 지나 마침내 ‘달팽이’가 되었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고, ‘진영’에서 ‘꾸꾸’, ‘개구리’, ‘뜸부기’ 그리고 마침내 ‘치타 또는 꾸꾸치타’에 안착을 했다. 처음 너를 알게 된 2014년으로부터는 7년, 너는 나의, 나는 너의 형용사 또는 고유명사가 된 후로는 4년이 지났다. 나는, 이쯤에서 너와의 서사를 한번은 기록해 두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너와 나의 연애는, 살짝 어쩌면 많이 특별하다. ‘남성’과 ‘여성’의 사랑이라는 점에서는 보통의 범주에 속하지만 나는 시각장애인이고 너는 비장애인이다. 그러니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결합인 셈이다. 더구나 너는 동안이고, 나는 그러니까 얼굴이 묵직하다. 큰바위처럼 거대하다는 것은 아니고, 아인슈타인으로 치자면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흐른 것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중학교 3학년 시절 30세를 바라보던 담임선생님과 참여한 행사에서 만난 어느 교수님이 “어이쿠~ 선생님 안녕하세요? 학생이 굉장히 동안이네요. 허허~” 라는 듣기에 따라 친절한,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망언에 가까운 말을 건넸을 때 나는 세상이 결코 녹록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 여기서 선생님은 나를, 학생은 선생님을 지칭한 거였다. 아마 너는 키득거리며 고개를 깊이 끄덕이고 있겠지. 치킨집에서 너와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할 때에도 상당히 많은 점원들이, 아니 대다수가 너에게만 주민등록증을 요구하곤 했으니까. 심지어 굳이 주민등록증을 꺼내는 내게 “아, 손님은 보여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라며 단호히 돌아서는 사람까지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입에 도끼라도 달린 줄 알았다. (웃음)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들에게 너는 미성년자로, 나는 성인으로 보인다면 대체 무슨 관계로 추정하는 걸까. 설마 부녀관계는 아니겠지? 정말 그정도는 아닌데.
어쨌든 나는 사회가 우리 사이에 그어놓은 장애와 비장애 시리도록 이분법적인 구별을 깊이 있게 다루고 싶어졌다. 사실은, ‘우리’로 표상되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불특정한 장애/비장애 커플, 아니 그 너머 ‘사람’의 사랑을 논하고 싶었다. 내가 무수히 범주 앞에서 멈칫거리고 돌아서고 절망하던 시간까지. 그래야 무수히 많은 망설임과 질문에 위로를, 때로는 용기를 건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한 오지랖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숱한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절망과 두려움을 아는 너라면, 때로 우리가 마주한 벽을 기억하는 너라면 나를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글에는 내가 차마 너에게 뱉어내지 못한 망설임과 쓰라림이 담길지 모르겠다. 너를 믿지 못해서가 아닌, 무려 10살부터 29살까지 한국사회의 장애인으로 살며 숨쉬듯이 들이마신 공기와 시선, 감정과 인식 등이 멈칫거리게 한, 그래서 차마 입밖으로 내어놓지 못한 그런 얘기를 기꺼이 내밀 수 있을까. 부디 그러면 좋겠다. 말보다는 글이 익숙하고 편안하기에, 말이 서툰 나라서 이렇듯 지면으로 너에게 내 존재를 전한다.
물론, 이 글은 너에게 가장 먼저 닿을 예정이고 너가 문을 닫으면 어디에도 내놓지 않을 생각이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와 나의 서사니까. 다시 말해, 너는 오늘부터 나의 편집자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