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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Mar 24. 2021

치타와 달팽이 1

첫만남

  1. 첫만남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의 어느 선교단체의 캠프였다. 정확히는 캠프가 열리는 장소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사실 나는 캠프에 따라갈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우리의 덜렁이 친구 ‘그린’이가 꼭 한 명은 데리고 가야 한다며 맛있는걸 잔뜩 준다고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나선 길이었다. 간사님이 운전하는 차에서 만난 그녀의 첫 느낌은, 목소리가 이뻤다. (웃음) 비시각인에게 첫인상이 얼굴로 결정된다면 시각장애인에게 첫인상은 곧 목소리를 의미한다. 나는 또랑또랑하고 맑은 하이톤을 좋아하는데 그녀가 그랬다(그렇다고 만나자마자 반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녀는 빵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급하게 달려왔다고 했다. 그래서 속으로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학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선교단체 활동까지 어쩐지 그녀에게서는 성실의 냄새가 물씬 나는 듯했다. 더욱이 그녀는 나보다 한 학년 선배였기에 약간은 똘망똘망한 대학생의 전형을 보는 것처럼 내 마음에는 조그마한 선망이 어렸다. 기본적으로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기 삶에, 그 삶이 발딛는 세상에, 나아가 다른 사람이 마주한 세계를 상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런 거. 나는 그게 진짜 사람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내가 품은 선망이 아주 생뚱맞은 건 아니었다. 게다가 내 옆좌석에 앉은 어느 선배는 과제인지 오락인지 말 한마디 꺼내지 않고 노트북만 두들겨대고 있었기에 친근하게 나를 반기는 그녀의 태도가 퍽 고마웠다.

  캠프는, 그러니까 배불렀다. (민망) 삼겹살, 전복, 부침개 그 외에 수많은 간식. 다만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린이와 그녀는 캠프 내내 아옹다옹이랄지, 알콩달콩이랄지 남매처럼 투닥거렸고 말주변이 없는 나는 옆에서 그저 하회탈처럼 빙글댔다. 솔직히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차피 나는 그린이의 간청과 먹이 유인으로 인해 딸려온 것 뿐이고 다음부터는 모임에 나갈 일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1박 2일의 캠프 후에 선교단체 모임에 몇 번을 나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무려 3번을 모이는 것은 당시 내게 다소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성실하지 않게, 이놈이 도대체 구성원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드물게 참석하곤 했다. 간사님과 대표인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말 얄미운 참석자였을 거 같다. (웃음) 하지만 고정적인 구성원이 되고 나면, 그런 확신을 주고 나면 결국에는 기대가 생기고, 나에 대한 실망이건 모임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의 실망이건 섭섭함을 불러올 것 같아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완전히 발길을 끊기에는 그녀도, 그린이도, 간사님도, 그 외 사람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인가 문득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며 둘이 만나 밥을 먹자는 거였다. 사실 그녀와 단 한번도 둘이 밥을 먹은 적이 없었기에, 심지어는 길을 걸을 때에도 난 늘 그린이에게 안내를 받았으므로 그녀의 연락이 조금은 얼떨떨했다. 약간은 설레기도, 약간은 꺼려지기도 했다. 그녀가 싫어서는 아니었고, 혹여 둘이 만나는 이유라는 것이 상당수 대학에서의 모임처럼 좀더 열심히 나오라거나 왜 자주 나오지 않는지 등을 묻기 위한 거라면 실망스러울 거 같아서였다. 나는 이미 1학년을 지나며 에너지가 고갈된 인공위성이 지구 주변을 표류하듯 차마 떠나지는 못하되 완전히 속하지도 않은 모임과 만남을 숱하게 겪은 터였다. 각자의 관심은 저 멀리에 있는데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움직이고 대사를 치는 모양이 참 덧없게 느껴지곤 했다. 특히 이미 내게 한번 밥을 산 적이 있는 선배가 “정말 우리가 밥을 먹은 적이 있다구요?” 할 때에는 매일밤 지우개라도 잡아먹는 건가 싶어 아득하기까지 했다. 하마터면 혹시 분신술을 쓸 줄 아는 거냐고 되물을 뻔했다.

  다행히 신촌역 3번 출구에서 만난 그녀는 모임에 대해 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 예상보다 훨씬 투명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운동삼아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있다는 그녀는 일상에 대해, 그린이에 대해 나의 안부에 대해 재잘댔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말이 많지 않은 나이기에 당시의 그녀가 침묵을 메우느라 식은땀을 흘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우리에게는 사고뭉치 그린이의 여러 흑역사가 있었으므로 을씨년스러움이 찾아올 때에는 얼른 그린이를 갖다 썼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이동한 우리는 각자 음료를 골랐다. 그녀는 (아마도) 아메리카노, 나는 그린티라떼. 벨이 울리자 그녀는 음료와 빨대를 가져다주었다. 그때도, 지금도 그녀는 변함없이 음료며 음식이며 셀프인 가게에서는 기꺼이 수고를 해준다. 그럼에도 한번을 생색내는 법이 없다. 새삼 고마움이 솟는다. 사실 내가 도움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그녀의 덕이다. 여기서 편하다는 것은 결코 당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빚지는 걸 싫어한다. 더욱이 남녀관계라면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사회가 은근히 부과해놓은 역할에 강박을 느끼곤 했다. 이를테면 카페나 식당에서는 주로 남자가 음식을 받아오고, 연인일 경우 집까지 바래다주는 등. 물론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지만 늘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괜스레 미안함과 민망함을 갖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까 그걸 편하게 생각하도록,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의무와 빚이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은 그녀의 어떤 태도 혹은 재능이 아닐까 한다.

  다만, 내 음료는 그린티라떼가 아니었다. (웃음) 그녀가 가져온 것은 모카라떼. 첫입을 먹자마자 내 혀가 집회·결사의 자유에 따라 시위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확실히 그린티라떼의 맛은 아니었다. 나는 이게 내꺼가 맞는지 물었고 그녀는 모카라떼가 아니냐고 했다. 그제야 나는 아, 잘못 가져온 것이 아니라 주문을 잘못한 거구나 하고 안도했다. 적어도 다른 사람의 음료와 바뀐 건 아니었으니까. 이윽고 너무 순진하게 되묻는 그녀의 모습이 헤맑아 괜히 웃음이 났다. 내심 어떻게 하면 그린티라떼를 모카라떼로 잘못 들을 수 있는 걸까 싶었지만 내가 여태 보아온 그녀라면 음료를 잘못 주문한 사실을 아는 순간 새로 하나 사오겠다고 할 것 같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다행히 카페인에 민감해서는 아니고, 맛이 없어서.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는 내게 인생보다 견딜 수 없는 씁쓸함이어서. 차라리 몸에 좋은 한약을 마시면 마셨지 도너츠가 없는 이상 커피는 도저히 마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카라떼는 생각보다 달달해서 괜찮았다. 어쩌면 그래서 말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였다면, 분명히 나는 온몸으로 “이건 내 것이 아니야” 라고 외쳤을 거다.

  귀엽게도 그녀는 이후 나와 듣는 수업에 선물이라며 모카라떼를 사들고 오곤 했다. 깔깔~ 사귄 이후에 이 이야기를 해주자 그녀는 “아니, 그럼 말을 해야지. 난 너가 진짜 모카라떼 좋아한다고 생각했단 말야!” 하며 꽤 억울해했다. 2017년에 연애를 시작하기까지 알려주지 않은 것은 내가 봐도 좀 심했다. 그렇지만 정말 모카라떼는 괜찮은 편이었다. 혀가 투덜대지 않고 받아들인걸 보면 진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운 여름에 모카라떼를 사들고 오는 마음이 고마워 토를 달지 않았다. 점차 이유가 그렇게 변했던 거 같다. 물론 그럼에도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였으면 거절했을 게 분명하다. 낭만적으로 너가 사준 것이라면 에스프레소도 꿀같아 그런 대사를 기대한 건 아닐 거다. 그랬다가는 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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