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나의 5일
"여기에서 결정하자 진호야 네가 힘들면 내려가자, 집에 가자고 해도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게 어떻게 할래?"
체육 선생님이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어렸을 적부터 여러 분야에 도전을 했다. 체대 입시를 위해 운동했던 적도 있었고, 어렸을 때 운동 선수의 꿈을 가진 적도 있었다. 큰 틀에서의 도전은 많지 않지만 크고 작은 수많은 도전이 있었고, 삶에 있어서 정말 기억에 진하게 남아 있는 도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국토종주였다. 아버지와 단둘이 집에서 시작해서 부산까지 663Km의 대장정을 자전거로 종주했다. 우천으로 하루 쉰 날을 포함하여 4박 5일의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이 순탄했냐고 물어보신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첫날부터 자전거 고장 문제, 체력적 한계, 근육 경련 등으로 힘들어했고 그 날의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해서 하루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근육의 경련을 막기 위해 밤마다 마사지를 받아야 했으며 근육이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을 견뎌야 했다. 하루에 100~120Km의 거리를 오롯이 내 자전거와 허벅지의 힘에 의존하여 이동해야 했으며 소조령에서 2Km의 오르막길을 넘고 나니 이화령이라는 대 관문이 있었고 정장 5Km의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포기라는 단어가 목전까지 올라왔다.
"여기에서 결정하자 진호야 네가 힘들면 내려가자, 집에 가자고 해도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게 어떻게 할래?"
이화령의 어느 언덕에서 물 한 방울을 마실 힘조차 없다고 생각됐던 순간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포기하고 싶었다. 이게 뭐라고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지려 했다. 3분여 동안 말없이 고민했다. 아직 나는 체력적으로 완성된 몸이 아니기에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돈 많이 벌고 싶지? 그럼 아빠랑 같이 가자"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나는 그 말 한마디에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어를 최대로 낮추고, 몇 번의 휴식을 더 취한 끝에 결국 이화령 정상에 도착했다. 아직 여정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모든 대장정이 끝난 것 같은 기쁨이 밀려왔다. 곧이어 펼쳐진 5km의 내리막길은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소조령과 이화령을 지나고 나니 산책길처럼 완만한 코스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렇게 이틀 뒤에 나는 드디어 목표했던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감격의 눈물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대신 평생 잊지 못할 기억과 함께, 엄청난 자존감을 얻었다. 국토종주를 해본 사람인데, 다른 도전이라고 못 해낼 이유가 있을까?
삶에는 한 번쯤, 자신의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도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며 다시 그날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도전을 향한 마음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