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안정기

태동과 괜찮아진 것 같은 착각

by 동그란감자


임신 19주쯤 되었을 때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회사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고 늘 그렇듯 모니터를 보며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아주 미세하게 배 안쪽에서 툭 하고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착각인 줄 알았다.

이게 태동인가? 했지만 소화가 되는 느낌일 수도 있고 근육이 움직인 걸 수도 있다고 넘겼다.






하지만 그 느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아주 약하지만, 분명히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아, 이게 태동이구나.’

순간 숨을 멈춘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회사 한가운데였지만, 그 몇 초 동안은 주변 소리가 전부 사라진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작은 움직임이, 단순한 신체 반응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누군가가,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손을 살며시 배 위에 올려봤다. 아직 겉으로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는 분명히 무언가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괜히 한 번 더 숨을 죽이고 기다려봤다. 혹시 또 느껴질까 봐.

그날 이후로 나는 자꾸만 배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을 하다가도, 회의 중에도, 문득문득 ‘지금 또 움직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일정하지 않고, 아주 가끔씩 느껴지는 정도였지만, 그 작은 신호 하나가 하루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조금 덜 외로워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에 또 다른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몸이 조금 괜찮아진 것 같은 느낌.

초기 때 그렇게 힘들었던 입덧도 많이 잦아들고, 하루 종일 이어지던 피로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출근길을 버티는 것도 이전보다 수월해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좀 괜찮아진 걸까?’

그 생각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 방심하게 만들었다.

예전보다 덜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조금 더 많은 걸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뤄두었던 일을 처리하려 하고, 예전처럼 다시 속도를 내보려고 했다. “이 정도면 할 수 있지”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하루 이틀은 괜찮은 것 같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다시 깊은 피로가 몰려왔다. 별것 아닌 일에도 숨이 차고, 오후가 되면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버거운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 깨달았다.
‘괜찮아진 게 아니라, 잠깐 덜 힘들었던 거구나.’

임신 중기의 안정기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편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내 몸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고, 나는 그 변화 속에 있는 상태였다.

태동을 처음 느꼈던 그날과, ‘괜찮아진 것 같다’고 착각했던 그 시기는 묘하게 겹쳐 있었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더 또렷하게 느끼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로 인해 생기는 변화를 잠시 잊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 한다.
괜찮아졌다고 단정 짓기보다, ‘오늘은 조금 나은 날’이라고 받아들이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괜찮은 날에도 너무 무리하지 않기. 그리고 다시 힘들어지는 날이 와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

배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움직임은 여전히 나를 놀라게 하고, 가끔은 웃게 만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게 된다.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임신 19주.
나는 여전히 적응 중이다.

조금은 덜 힘들어졌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
그리고 무엇보다, 보이지 않던 존재를 처음으로 ‘느끼기’ 시작한 시간.

그 변화 하나만으로도, 이 시기는 충분히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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