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눈물
임신을 하고 나서 가장 낯설었던 건 몸의 변화보다 감정의 변화였다.
서른하나가 되기까지 나는 나름대로 감정을 잘 다루는 T로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기분이 나쁘면 이유를 찾고 스스로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서는 그 모든 방식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이 생겼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아무 예고도 없이 밀려왔기 때문에
어느 날은 정말 사소한 일에 눈물이 났다.
회사에서 누군가가 툭 던진 말 한마디였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상황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자리로 돌아와 일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왜이래 회사에서 무슨 눈물이야 싶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서 한참을 울다가 운게 티날까봐 거울을 보는데 그 모습이 낯설었다.
회사에 친한언니가 힘들다고 운적이 있었다.
뭐가 문젠지 들어주고 싶었는데 이유없이 눈물이 나 라고 했던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없이? 이유가 있겠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토닥여 줄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이유 없는 눈물이라는 게 정말 존재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감정은 눈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어떤 날은 괜히 예민해지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불안해졌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도 갑자기 버겁게 느껴졌다.
특히 회사에 있을 때 그런 감정이 올라오면 더 힘들었다.
원래 하던일이고 이러면 안되잖아 라는 생각이 스스로를 더 조이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일을 하고 있는 나와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는 내가 자꾸 충돌했다.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아이를 신경 안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반대로 몸이 힘들어서 쉬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일을 놓아도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따라왔다.
스스로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야근을 하게되면 늦은 시간까지 자리에 앉아 일을 하면서 한쪽마음은 이러다 애기 잘못되는거 아니야? 안정을 취해야 한다 했는데 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내 일인데 할건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시간 퇴근하며 어두워진 밤하늘을 보다가 엄마가 생각이났다.
그냥 보고싶은 그런날이 있다.
뚜루루 뚜루루.. 신호음이 가고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되는게 왜이리 힘들어? 물었고 엄마는
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잘하고 싶어서 생기는 거라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했다.
일도 놓치고 싶지 않고 아이도 최선을 다해 지키고 싶은 마음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거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무리만 하지말고 지금 이 페이스대로 해도 잘하고 있다고 가끔은 너를 다독여줘 하는 엄마말에 조금은 마음이 안심되었다.
그리고 울고싶으면 울으라고 왜 어릴때부터 그러지를 못했는지 엄마는 그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자취하면서도 생긴 버릇중 하나가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하는거였다.
나는 괜찮지 않은데 그냥 혼자 속으로 되뇌었다.
힘든게 반복되어 슬럼프가 찾아오면 다들 이렇게 사는데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말자 하며 금방 일어났다.
눈물이 나면 밖에가서 뛰고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잊혀졌기 때문에
그치만 이젠 억지로 참지 않기로 했다.
감정이 올라오는 걸 막는거보단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있다.
그렇게 시원하게 울고나면 다시 감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임신 기간의 감정은 롤러코스터 같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감정에서 중심을 잡기 아직은 어렵지만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고 있다.
이 모든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엄마인 모습의 내가 남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