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서로 친하다는 이유로 욕을 난사하며 혹은 거침없는 감정표현을 드러내며
그런 것이 친하다는 증거인 것처럼 징표를 새기듯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중요한 존재이길 바라는 마음.
친하니까 내 모든 것을 다 드러내도 된다고.
물론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반대로 상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지만
반대의 경우 좋지 못한 솔직함을 보여주면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당황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또 뭐든지 간에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고 어색했던 시기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세계관이 정립되어가는 이제 막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시기여서
자신이 처음 받아들였던 것들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시기
중, 고등학교 때 연을 이었던 친구들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이나 감정을 다 받아주고 이해해주어서 그랬을까?! 아직까지도 연락이 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 친구들에게 상처 받기도 하고 때로는 살갗처럼 가깝게 지내기도 했던 거 같다
요즘 10대 친구들은 줄임말을 그렇게 좋아하고 야민정음을 그렇게나 좋아한다.
댕댕이, 머머리, 라댄, 커여워 등등 문자 자체를 파자하거나 연결하여 만드는 야민정음
혹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네), 별다줄(별 걸다 줄이네), 할말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등의 줄임말들을
사용한다.
이런 언어들은 소통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용자끼리는 어느 정도 돈독함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과는 소통 자체가 안 되겠다.
그 말인즉은 자신의 커뮤니티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한정하고
그 사람과 자신의 대화 혹은 비밀을 나누겠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있는 듯하다.
에너지가 넘쳤던 시기 그러면서 불안정한 모습
때로는 수줍어하지만 한발 앞으로 걷고 싶어 하고.
마치 뭉게구름처럼 번져가는 느낌으로 변화무쌍하기도 한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이 떠오르기도 한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처음 KBS독립 영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벌써 한 9년 가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새벽에 했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 처음 파수꾼이라는 영화를 접했었다.
외적 성장과 내적 성장의 차이에서 오는 불안정함,
진심과 표현의 괴리를 드러내는 미성숙함을
보여주는 소년들
파수꾼은 윤성현 감독의 첫 데뷔작이기도 하고 영화 자체가 저예산 독립영화인데, 실제로 돈이 없어서 감독님 패딩을 배우 여러 명이서 빌려 입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마치 나를 학창 시절로 끌고 들어가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교복 입고 지하철역 근처에서 만나서 떡볶이 먹고, 피시방 가고, 대학 이야기, 성적 이야기, 좋아하던 사람 이야기, 좋아하던 선생님 이야기, 가족 이야기, 좋아하는 과목 싫어하는 과목 이야기, 자신의 미래 꿈 하고 싶은 것들 이야기
그런 것들을 처음 털어놓을 수 있었던 친구라는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는 시기라 더욱 아련하기도 하고
더욱 그 청소년기 시절이 그리웠던 것 같다.
영화 촬영 현장 자체도 파이팅이 넘치는 소년의 에너지가 넘쳤던 거 같다.
촬영 자체를 핸드헬드 기법으로 찍어서 일부러 촬영 자체를 흔들리기 찍으며 불안정한 소년의 마음을 카메라 촬영기법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저 예산이어서 스태디캠이나 지미집 같은 고가의 장비 자체를 빌릴 수 없다는 안타까운 비하인드도 있다.ㅠㅠ 그러한 것들 자본의 한계를 이겨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이때 당시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배우는 현재는 유명 배우들이시지만
이때 당시는 무명에 가까워서 다들 첫 열정을 담아낸 영화가 아닐까 싶다.
얻을 것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잃을 것은 없던 신인의 열정이 었을까?!
실제로 서준영 배우님은 아역배우 활동으로 이름을 알리시긴 했지만
이제훈 박정민 배우님은 데뷔작이었기 때문에 정말 신선한 얼굴이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3명의 친구가 함께 친구처럼 지낸다 이제훈 씨는 학교에서 싸움을 잘하는 친구이지만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어머니가 계시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외적으로 강하지만 내면은 항상 불안정하여 표변하는 지평선 같은 느낌이 있다.
실제로도 이제훈 씨는 그러한 연기를 엄청나게 잘 해냈다 원 씬 원테이크에서 누군가를 달래다가도 갑자기 변하여 화를 내는 연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압도를 한다.
반면에 박정민 씨는 이제훈이 갖고 있는 힘과 인기를 부러워한다.
이제훈을 좋아하는 여자배우분을 박정민 씨가 몰래 좋아한다.
그 둘의 사이에서 중간다리처럼 항상 든든하게 있어주는 서준영 씨
이 세명의 연기를 보면 진짜 학창 시절의 어느 한지점이 떠오르는 듯하다.
그런 그들에게도 말의 오고 감에 있어 상처가 된다
박정민 씨는 이제훈 씨의 가정사를 건드리고
이제훈 씨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박정민 씨를 공개 망신을 주어서 자존심을 건드리고
이제훈 씨는 또 서준영 씨의 여자 친구의 과거를 들추어내어 서준영 씨에게 상처를 주고
끝내 박정민 씨와 서준영 씨는 이제훈 씨에게 상처 주는 말로
더 이상 이제훈 씨는 갈 곳이 없어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이다.(너무 스포일러였나?! 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주는 방법에 있어 과정에 있어의 미숙함을 여실이 보여주는 것은
이제훈 씨가 박정민 씨를 그렇게 때려놓고 미안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그렇게 아끼던 야구공을 박정민 씨에게 주는 장면에서 나온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받았다던 야구공. 실제로 영화초에 야구공이 없어지는 장면이 나오고
이제훈 씨는 정말 필사의 노력으로 야구공을 찾아내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 정도로 이제훈 씨에게 야구공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 표현하는 나를 연결하는 매개물이고
그것을 박정민 씨에게 주면서
나는 너를 소중하게 생각해.
넌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야
라는 표현을 하지만.
그 말투나 표현은 낯간지러운 듯 살짝 던져주면
이러면서 시큰둥하게 가버리고
그 감정을 박정민 씨는
이런 표정을 짓는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미숙한 소년들.
이제훈 씨는 서준영 씨의 여자 친구의 안 좋았던 과거까지 들추어내지만
서준영 씨는 이미 다 알고 여자 친구 만나는 거고 좋아하는 거라고 한다.
그렇지만 서준영 씨의 여자 친구분은 그런 과거를 서준영 씨에게 들켜버려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되고 서준영 씨와 이제훈 씨의 관계 또한 틀어져버린다.
(친구끼리 친구의 애인에 대한 평가는 위험하다)
가장 내면이 약했던 이제훈 씨
항상 어머니의 부재가 존재했기에
친구들의 관심을 받길 원했고 그것으로 표징 되는 야구공
친구들과 캐치볼을 할 때면 야구 선수가 된 것 같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이제훈 씨
그렇게 항상 관심이라는 권력을 지향했던 이제훈 씨는
그 힘의 함정에 빠져 버린다
변화를 인지하는 예민함이 없었던 소년이 겪는 아픔..
소년 시절에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을 것만 같았다.
이제훈 씨에게도 친구가 세상의 전부고 온전한 나를 받아주는 우주였는데.
그것을 잃어버린 이제훈 씨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다.
사실 그 아픔으로 누군가는 성장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에
이 세 배우는 공감할 것이다.
이건 어른이 된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든 치유해야 될 것만 같은데
그래야 성장할 것만 같은데.
꼭 그런 것은 아닌 거 같다.
그럼에도 악한 감정은 빨리 털고 그래도 좋았던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사실 이건 내가 살아오면서 체험했던 것인데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가 고통에서 해방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챙겨주고 도와주면 내가 손해 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이기적이신 분들도 계시지만 말의 속뜻을 보면
내가 잘못한 게 있기 때문에 사과라는 행위로 이 잘못을 풀지 못하면 내가 괴로우니까 사과를 받아줘라라는 뜻이고
더 간결하게 표현하면
잘못이 있으면 괴로운 감정도 남아있어.라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을 하면 순간적으로 내가 이득 본거 같지만.
반대로 나의 상념에 미안함이 남아있다.
그럴 때면 진심 어린 사과를 먼저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사과하는 본인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친구든 가족이든 있지도 않은 애인이 든 간에
사랑을 먼저 표현하는 것을 세상에서는 바보 같은 일이고
먼저 사랑을 표현하는 쪽이 지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먼저 사랑을 표현할 때 상대가 기뻐하고 좋아하고 감사해하는 마음에서
내가 자유하게 되고 나의 행복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 소년들도 그렇게 감정을 잘 표현했더라면
아니면 원래 소년이라는 것이 그럴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일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