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진 Oct 23. 2022

'종이 동물원'을 읽고서,

켄 리우 저


<사진 출처 IK SK / 황금가지>


일이 끝나고 저녁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개운하게 샤워를 하는 저녁의 루틴이 끝나고 나면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다. 

가끔은 야근과 새로운 것들을 찾아나가며 배우느라 이 소중한 시간을 놓치기도 하지만 이번 주부터 지인의 소개로 시작하게 된 격주 독서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괜찮은 책을 한 권 읽어야만 했다. 

한국에 있을 때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있는 작은 도서관에도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내가 그나마 책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은 밀리의 서재 1년 구독권과 이제는 구형이 되었지만 훌룡하게 Ebook 리더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아이패드 덕분이다.

도서관과 밀리의 서재가 다른 점은 내가 끝까지 읽지 못할 책에 대한 부담감과 리스크가 적다는 것이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남아있는 책장의 개수를 몸으로 느끼며 글을 체화하고 상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 방법이라는 것은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졌지만, 한국에서도 도서관을 가지도 않고 한국어로 된 책을 구하기 힘든 헝가리에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누가 보면 밀리의 서재 홍보대사처럼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읽고 싶은 책들을 나의 서재에 수십 개 꽂아 놓고는 자유롭게 읽고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은 독서에 대한 물리적인 제약을 온전히 삭제시켰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책을 읽고 지금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우리가 개발한 새로운 과학기술은 결국 우리의 쓰임에 의해서 다시 한번 정의를 가지게 되고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아무튼 사설이 길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거창한 수상내역도 아니었고 서평도 아니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침착맨 채널에서 '책은 물이고 영화가 술'이라고 말했다. 

나의 해석을 더하자면, 화려한 수식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맛과 향에 대해서 기대를 하게 되고, 요즘 한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 열풍이 부는 위스키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수상내역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알 수 없는 맛과 수상 기준에 대해 실망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책의 서문과 맨 앞의 5장을 읽었을 때 흡입력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코스요리에서 애피타이저가 형편없으면 메인과 디저트에 대해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러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독서를 시작할 때도 같은 기준에서 책을 끝까지 읽을지 판단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좀 다르게 접근했다.

이 책은 여러 단편 소설로 구성된 책이었고, 몇몇 이야기들은 읽기에 난해하다는 생각과 인트로를 세네 번 다시 읽어도 읽히지 않는 소설들이 있어 의도치 않게 편식을 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본 책들 중 가장 흥미로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종이호랑이>

모든 내용을 담아 독자 여러분들의 재미를 훔치고 싶지는 않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중국계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용이 소설 처음부터 등장하고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중국어 사용으로 인해 갈등을 빚게 된 자식이 한동안 어머니를 보지 않다가 나중에서야 어머니가 접어주셨던 종이호랑이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느끼게 되고

주인공의 가슴이 아닌 독자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소설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겠지만 그것이 내가 의도하는 바이다.

사실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장치들과 아름다운 은유적인 표현들이 소설 곳곳에 녹아들어 있어,

나는 오히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해했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종이호랑이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전달이었고

한동안 자식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문화에 동화되어가면서 삶의 터전에서 원하는 문화와 규칙을 따르며 어머니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식은 잔인하게도 본인의 생존만을 위해서 집중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그대로 본땄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십 년 동안 가혹하게 어머니에게 굴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주인공만큼 진정한 불효자를 찾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하나, 내 마음과 생각을 뒤흔들었던 것은 어머니의 언어 '중국어'였다.

작중에서 어머니는 국공내전 중에 발생한 안타까운 현실에 처한 피난민중 하나였고 먹고살기 위해 미국에 거의 팔려오다시피 하면서 영어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한 채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게 된다.

그렇게 자식을 낳게 된 이후에도 남편의 요구와 사회의 요구에도 중국어를 주로 사용하다가 주인공의 폐륜에 가까운 반발에 못 이긴 이후에 영어를 배우게 된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그림이다.

나의 아내는 본인의 선택과 나와 같이 지내고 싶었기에 한국을 택했었고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이었던 '한국어'를 힘들게 배워나갔다. 그리고 나와 대화할 때도 항상 '한국어'만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그녀도 자신에게 가장 편한 중국어로 나와 대화를 하고 싶었는지 중국어를 계속해서 공부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사실 지금도 많은 시간을 중국어에 투자하고 있지 못한다.

하지만 헝가리로 넘어오고 난 뒤에는 그녀의 심정이 더욱 이해되었다.

회사에서 쓰는 메일의 절반은 영어고 밖에 나가도 의사소통을 하려면 영어를 써야 한다.

외국계 기업에서 꽤나 근무했다고 하지만 영미권 국가에서 체류해본 경험 자체가 없는 나에게 영어는 아직도 무겁기만 하니까.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브런치에나마 털어놓으려고 이렇게 글을 쓰는데 나와 함께 같이 지냈던 몇 년 동안 한국말만 거의 써야 했던 그녀는 얼마나 답답하고 칙칙한 기분으로 삶을 살아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 소설은 나에게 20대의 청춘을 함께 해준 아내의 심정을 해외이주보다 더 깊고 진하게 농축된 감정의 응어리를 내 맘속에 투척했다.

 

사실 그 외에도 싸이버펑크, MR.Robot,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떠오르는 단편 소설이 이 책에는 담겨있다.

나머지 단편 소설에 대해서는 다음에 포스팅하도록 하겠지만 이미 저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말하는데 먼저 읽어보고 싶지 않은가?


작가의 이전글 실례지만, 제가 좋은 직장 동료가 될 수 있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