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 스포일러 주의
한로로의 자몽살구클럽을 읽어보았다.
평소에 매우 좋아하던 뮤지션이라서 , 새로 나온 앨범과 같이 나온 책이라는 소식에 허겁지겁 구매했다.
소녀의 목소리로 다양한 노래를 불러주는 한로로는 특히 노랫말에 영어가 별로 없어 내가 애정하게 된 뮤지션이다.
집이 무너진 거 같아, 제목이 ‘ㅈ l ㅂ’이 됐다는 활활 타오르는 곡
따스한 봄에 흔들리는 청춘을 표현한 거 같은 제목 ‘입춘’
새로 나온, 난 널 버리지 않는다고 불러주는 제목 ‘0+0’
모두 사랑스럽지만 어둡고 여리지만 강하다.
한 줄 평을 하자면, 그런 한로로의 개성이 잘 묻어나는 소설이었다.
이 책은 새파랗게 어린 중학생 소녀 네 명이 한 클럽활동을 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뭔가 달콤 쌉쌀함이 느껴지는 자몽살구클럽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과는 다르게,
자몽
살구
클럽을
줄여보면?
‘자살클럽’이 된다.
처음 이 줄임말의 의미를 알게 됐을 때, 표지에 그려진 상큼한 과일의 모습과는 상반된 그 의미 때문에 이마를 탁 쳤다.
대박! 소오름!
한 챕터 당 한 명이 돌아가며 자신이 죽어야하는 사연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읽다보면 미숙하고 치기어려보이는 클럽의 이름이 그럴만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관심과 알코올 홀릭 아버지에 의해 폭력으로 방치된 아이
모범생이자 학교 회장이지만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
곧 엄마를 잃고 소녀가장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
평생의 친구이자 연인을 잃게 되는 아이
약한 속을 가진 자몽과 살구처럼 자신만의 물렁한 속살의 상처를 보여주며 자신들이 왜 죽어야만 하고 네 명의 우리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게 되는지 어떻게 죽는지 보여준다.
한 사람당 자살로 죽기 전까지 주어지는 시간은 단 20일.
20일의 D-day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기로 이미 결심한 사람 주위의 3명이 한명을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붙잡는 구조였다.
가장 맘을 스친 주요부분은 네 명이 갑자기 찾은 바다와 그 ‘바다와 토마토’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부분이었다.
여리고 살고 싶지만 죽고 싶어 하는 소녀 네 명이 갑자기 바다로 여행을 가는 모습은 추억을 자극하는 동시에 청춘을 그대로 상영해주는 느낌이었다.
나도 갓 스물에 친구 넷과 바다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먹은 비릿하고 고소한 조개구이 맛과 씁쓸한 술맛과 우연히 만나 헌팅한 남자들에 대한 수다와 갯벌에서 같이 뒹굴다 놀이기구까지 타던 추억의 페이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소녀는 자신의 엄마와 현실과 찬란한 청춘의 바다 한 페이지를 교차시키는 ‘바다와 토마토’란 영화를 클럽 일원들에게 상영한다.
글이 시각화 된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내 추억과 소설 속에서 상영되어 흐르는 영화가 뒤섞이다 못해 겹쳐졌다.
바다를 찾았던 네 소녀는 운명이었던 듯 죽음의 소용돌이로 흘러간다.
바다가 잠시 그들을 살려냈지만, 현실이 다시 네 소녀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소설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세상은 발악하는 우리(네명의 소녀들)의 눈 코 입을 베개로 지그시 눌러 아무도 모르게, 완전히 묵살시킬 뿐이었다. 그렇게
한 명은 살았고
한 명은 살아서 노래를 부르고
한 명은 죽는다
한 명은 죽으려다 죽인다
작가의 말에서 한로로는 이야기한다.
어딘가 살아내고 있을 이 네 소녀같은 이들이 '죽지않고 무사히 자라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어른이 되고싶다'고.
조금 아쉬운 부분은
행복해지길 바라기만 했던 소녀들의 꺄르르한 웃음이 순식간에 사그라 든 것이다.
그 부분이 자몽의 쌉쌀함 같았다.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현실은 원래 잔인하니까..
개인적인 바램은 그 넷의 해피엔딩이었지만, 어쩔수없이 슬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콤한 추억과 쌉쌀한 현실의 맛이 뒤섞여 과즙이 핏물처럼 흐른다.
교복을 입고 친구가 전부이던 툭 하면 요절을 꿈꾸던 과거의 나와 친구들이 보인다.
소녀들과 추억과 청춘은 다 어디로 갔더라.
울컥하여 이젠 고양이만 남은 내 곁을 한 번 훑어본다.
고양이가 슬쩍 드러눕는다.
고양이를 만진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한로로, 0+0 가사 중에서
달콤한 첫 맛 뒤에 씁쓸함이 올라온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사람들은 울면서 달리며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살구싶다, 살구싶다, 살구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