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짜리 위로

죽음의 앞과 뒤

by 도씨


나는 내리 4년 정도를 혼자서 장사를 했다.

직업을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서비스직이자 고객은 별로 없지만 유독 단골이 많은 매장의 혼자 일하는 직원이었다.


그래서 고객과의 스몰톡은 당연했고, 친절함으로 포장된 장삿속이었다.


하지만 그 대화 속에서 나는 늘 ‘사회생활 가면’을 쓰고 있어야 했고,

그게 얼마나 진을 빼는 일인지 누구도 몰랐다.

단 몇 분 대화를 했을 뿐인데

혼자 넋 놓고 앉아 있는 시간이 한 시간은 가곤 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씩 닳고 지쳐갔다.

사람을 직접 상대하고 대화하는 건 도무지 내 적성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충전이 되는 사람이 있다지만,

나는 분명 그런 그릇이 아니었다.


그러다 운명이 행복할 줄 모르냐며 정신을 차리라는 듯 뒷통수를 퍽 치고 지나갔다.

운명왈, ‘엄마가...췌장암이랍니다!’


나는 엄마의 죽음 앞과 죽음 뒤에 많은 위로와 고마움을 목격했다.


특히 당시의 사장님은 몇 년이 지나도 고마울 정도로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어쩔 수 없는 연차소식과 함께 엄마의 췌장암 소식을 듣자마자 자리를 잠깐 비우시더니,

돌아와 바로 현금다발 100만원을 건네주셨다.

엄마 죽기 전의 열흘은 엄마 곁에 있으라고 매장을 비워두도록 허락해주셨고

돌아가셨단 소식에도 바로 통장에 또 100만원을 넣어주셨다..


난 그것도 모를 정도로 장례 중엔 정신이 없어서 나중에야

이상하게 많은 통장잔고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홀어머니의 장례식장이 혹시라도 비워질까 거래처들에게 소식을 전해 근조 화환을 다섯 개나 채워주시는 걸 보고 또 울컥했다.


그렇게 아 그래도 잘못 살진 않았구나 자뻑 하면서 눈물 콧물을 짰다.


그런데 의외의 눈물의 복병은 손님 중에 있었다.


스몰톡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는 동네 공부방 선생님이라던 손님은

몇 주간이나 왜 문을 안 열었냐고 조금 원망하는 듯 하더니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어머, 나한테 왜 연락을 안했어,”

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죄송하지만 저희가 그럴 사이인가요?’ 했지만

이내 손님도 민망했는지


“너무 미안하다, 어떡해. 마음이 너무 안 좋네..어쩐지 눈이 너무 슬펐어..”


하고 다음날 다시 와선 부조금이라며

흰봉투를 안 받으려는 손에 억지로 쥐어줬다.


“부담가질까봐 많이 넣지도 않았어. 그냥 받아요.”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뜻밖의 돈들이 모이나.

나는 그 순간 묘하게도, 갑자기 이상한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란 생각을 하고 있을때


“한번 안아줘도 되나?”

라고 하셨다.


한번 안아주시고 손을 꼭 잡은 뒤 매장 밖을 나가시는 것 아니겠는가.

그 때도 나는 눈물이 안 났다.

그저 그 품과 손의 따스함만 기억나는데..


흰 봉투를 열어보고 나서야 왈칵 울컥 와르르 하는 것이었다.

혹여 부담 될까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3만원..


그래요. 4만원은 애매하고 5만원은 많고 2만원은 너무 적다 싶으셨겠죠.

그래서 고민 끝에 정한게 3만원이었을 거구요.


봉투는 한없이 가볍고 얇았는데

그 삼만원이 왜 그리 무겁고 아리고 고맙고 슬펐던 것인지..

일하다 말고 스윽 눈물을 훔쳤다.


엄마의 죽음과 지쳐 닳았던 에너지가 풀충전 되는 느낌이었다.

배터리가 다 되어 깜빡 거리다가 곧 방전될

아니 이미 방전되어 충전도 안되던 내가


반짝 충전되었다.


사람은 사람 안에서 살아야 위로와 돈을 받는구나.

삼만원을 드륵 ATM기에 넣자 통장 잔고도 반짝 충전되었다.


엄마는 끝까지 나한테 이런 것도 알려주고 가네..라고 콧물을 스윽 훔쳤다.




브런치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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