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초과>
우리 집에는 한도가 초과된 물건이 두 개 있습니다. 카드 한도가 초과했다는 그런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랑이 초과 했다거나 행복이 한도를 초과했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망상도 아닙니다. 걱정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그 두 개의 물건 사이에는 그 어떠한 접점도 없는 완전히 상관없는 물건들입니다. 구입시기도 제각각인 데다가, 애초에 제작된 목적 자체가 완전히 다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것들은 모두 애초의 목적 따위는 잊고 옷과 관련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의자라는 것은 본래 앉기 위해 제작이 된 물건입니다. 오랜 세월 ‘좀 더 편하게’ 앉기 위해 이것저것 기능이 추가되어 왔지만,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적은 없습니다. 사람 또는 목적물을 편히 앉게 하기 위한 것. 그것이 의자입니다.
이 의자로 말할 것 같으면 생각보다 연식이 된 의자입니다. 5년은 넘고 10년은 안 되는 결혼생활보다 훨씬 오랫동안 간직한 의자죠. 정확한 구입시기는 모르지만 대충 10년이 좀 더 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시기 동안 컴퓨터 앞에서 저의 무게를 지탱해온 믿음직한 녀석이죠. 결혼 전에도 결혼 생활 중인 현재까지 가장 오랫동안 맞대고 있는 녀석이 아닐까 싶네요.
보통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러하지만, 좀더 편하게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저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 유행했던 게임은 한번 앉으면 적어도 30분 정도, 길게는 1시간 이상 쉬지 않고 플레이를 해야 했기에 장시간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구입하기로 결심했었죠. 대학생이던 시기라 십만 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구입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게이밍의자를 사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학생’이라는 신분을 망각하지 않은 탓에, ‘공부’나 ‘학업’을 위한 의자로 검색을 하여 구입한 것이 이 의자입니다.
철봉을 구입 한 건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 즈음이었습니다. 뱃살도 문제고 근육량도 너무 부족하다며 운동을 위해 구입한 것입니다. 부착 식으로 할까 설치 식으로 할까 하다가, 이왕에 사는 거 설치 식으로 사자고 마음먹고 구입을 했습니다. 그냥 밖을 달리라는 아내의 말에는 사시사철 하루 24시간 언제나 마음껏 운동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설득해 결국 결제를 하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창피한 일이지만 구입 후 물건이 배달 왔을 때엔 정말이지 환불하고 싶었습니다. 무게도 무게인 데다가, 부피가 너무 거대하다 보니 이걸 어디다가 설치해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생각보다 무겁고 생각보다 훨씬 큰 탓이었습니다. 물론, 깜짝 놀라 하는 아내와 같이 맞장구를 칠 수는 없기 때문에 무덤덤한 척 설치를 했죠. 성인의 몸무게를 안전하게 지탱하려면 무거워야 한다던가, 철봉의 밸런스를 위해 부피가 커야 한다는 하는 말을 곁들여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아내한테 말한 것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 말한 것이지만요.
아무튼 철봉 설치 후 한동안은 본래 취지에 맞게 운동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덕분에 상의는 꽉 조이게 되고 바지춤은 헐렁해졌죠. 완벽하게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목적 달성 후 느끼는 무료함인지 아니면 반복된 운동에 싫증이 나서인지 그 이후로는 철봉 출입이 차츰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아내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뭐라고 하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 아내조차 반복된 불만제기에 싫증이 나서인지 뭐라고 그조차도 뜸해지기 시작했죠.. 저로서는 다행이었습니다.
그 어떤 교집합도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물건의 설명이 끝났으니, 이 글을 쓴 본래 목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옷걸이로써의 한도 초과. 두 가지 물건 모두 옷걸이로써 옷을 걸 수 있는 수용 양을 한참 초과했습니다.
한도초과란 것은 원래 수용 가능한 양을 초과했다는 의미입니다. 애초에 이 물건의 목적은 그것의 수용 양을 정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도초과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 임의대로 했습니다. 뭐 제 마음인 겁니다.
의자의 경우는 이렇습니다. 등받이 상단 부분에 머리받침대가 튀어나온 모양이 꽤나 옷걸이랑 비슷해 보였죠. 마치 저에게 옷을 걸어달라고 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옷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참지 못하고 옷을 한 번 걸어보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이를 처음 시도했을 때는 겨울이었습니다. 두툼한 외투들이 보기 좋게 의자 등받이에 걸렸습니다. 퇴근을 하고 나서는 항상 앉지도 않을 의자를 먼저 찾았습니다. 옷걸이를 꺼내서 옷을 걸고는 다시 옷장에 넣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귀찮았거든요. 이런 복잡한 과정을 모조리 생략하고 단순하게 의자 어깨춤에 외투를 걸어놓는다는 간편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찌 보면 이 의자를 만든 사람이 숨겨놓은 의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옷이 걸린 모양새가 어울리고, 간편했던 것이었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 번 의자에 걸린 외투는 어지간해서는 옷걸이로 돌아가는 일이 없는 데다가, 외투가 한 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었던 것이죠. 추운 날씨엔 두꺼운 외투가, 그보다 더 추운 날씨엔 더 두꺼운 외투가 필요하다 보니 의자 위로 외투가 한 벌 두벌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바깥쪽으로 걸릴 외투는 좀 더 두껍고, 안쪽에 걸린 외투들은 좀 더 얇은 양상을 띠었습니다. 기후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뜻하지 않게 따뜻해진 겨울의 날을 만날 때였습니다. 의자 제일 안쪽에 걸린 비교적 얇은 외투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네다섯 개의 외투를 집어서 던져야만 했습니다. 설령 찾더라도 그 후에 정리해야 하는 것 또한 난감했습니다.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니 얇은 외투를 가장 바깥에 두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도 가끔씩 찾아오는 강추위에 두꺼운 외투를 바깥에 거는 것 또한 틀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런데 일반인이 기후를 예측할 수 있을까요? 그냥 두꺼운 외투와 얇은 외투를 교차로 쌓아놓는 것으로 합의를 볼까 했는데,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결국 생각 없이 손에 집히는 대로 쌓아놓았죠. 귀찮은 게 싫었으니까요.
그렇게 되자 겨울 동안은 한 가지 외투만 입게 되었습니다.. 추운 것은 싫고 더운 것은 견딜 만했으니 날이 대부분 따뜻한 삼월 까지도 의자 가장 바깥에 걸린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녔습니다..
이쯤 되면 한도초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옷걸이로써 의자의 옷 수용 양은 한 개입니다. 이미 두 개 이상의 옷을 의자에 걸치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한도가 초과된 셈이죠. 너댓 개를 걸고 있는 저는 초과해도 한참 전에 초과해 버렸습니다.
철봉은 너무나 이상적인 구조였습니다. 이를 의도하고 구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설치 식 철봉은 빨래 후 옷을 널어놓기에 너무나도 완벽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쭉 뻗은 기다란 메인 봉과 이런저런 동작을 유도하는 곁가지의 짧은 봉들이 빨래들이 서로 겹치지 않고 잘 걸리게끔 유도를 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위치도 손을 머리 위로 쭉 뻗어야만 닿을 수 있는 높은 위치에서부터 허리춤, 어깨 높이에 있는 봉까지 높이가 다양했습니다. 예로부터 러닝머신이 이런 역할을 맡아왔다고 듣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철봉에 비하면 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가격문제도 그렇고, 구조적인 문제도 그렇고요. 아무튼 밀린 빨래를 할 때면 집에 있는 건조대 만으로는 부족한데, 그 부족함을 철봉이 채워주는 시스템입니다. 철봉이 빨래건조 시스템 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내도 만족해했습니다. 특히 긴 원피스나 치마 같은 경우는 건조대가 낮은 탓에 곤란해하고 있었거든요. 그냥 높은 건조대를 사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애초에 이것의 목적은 운동이고, 옷을 위한 역할은 부수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듯이, 꼭 철봉으로 운동을 하고 싶은 날엔 빨래가 널어져 있어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요. 나중에는 운동을 하고 싶은데 빨래가 널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빨래가 널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운동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하고 싶은 마음만 있지 진짜로 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들을 치우고 운동을 할 정도로 부지런하지도 절박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어떤 것이든 부수적인 기능이 원래의 목적을 해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봉의 옷 수용 양은 ‘제로’입니다. 한도초과인 셈이죠. 손수건 하나라도 걸려있다면 운동하고 싶은 마음만 잔뜩 구슬려 놓고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철봉에서 멀어지게끔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제로’인 겁니다. 물론 제 마음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위에는 한도를 초과한 것들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