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부부

by 아고루포나

<전문가 부부>


어느 분야에나 전문가가 있습니다. 화가는 그림을, 선생님은 교육을, 목수는 목공일을 전문으로 하죠. 집안일도 예외일 순 없습니다. 빨래, 설거지, 청소 등등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존재합니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설거지는 아내가, 청소는 내가 전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전문이 아닌 설거지를 할 때엔 어느 정도 각오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아내가 오기 삼십 분 전, 미루고 미룬 설거지를 하려 도저히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근처에 사는 친구의 갑작스런 부름에 카페로 달려간 아내. 문을 나서면서 설거지를 해달라는 요청에, 호기롭게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왜 나는 설거지를 하겠다고 대답을 했을까? 후회를 해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죠. 어찌 됐든 하겠다고 했으니 아내가 오기 전에는 설거지를 끝내야만 했습니다.


두어 시간 정도 있다가 올 거라며 집을 나서는 아내의 말은 적어도 두어 시간 정도는 농땡이를 부려도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티비를 보면서 핸드폰을 보다가… 핸드폰을 보면서 티비를 보다가… 결국 티비와 핸드폰을 동시에 보기로 마음먹은 그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준비하고 일어나려고 해. 삼십 분 정도 걸릴 것 같아.”


‘삼십 분’이 걸린다는 말과 ‘이제 일어나려고’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분명 집 앞 오 분 거리인데, 일어나려는 준비가 이십오 분이 걸린다는 말인가? 의아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말이 되는 소리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알았다는 말로 대답을 하고는 설거지를 준비하려 일어섰습니다. 물론 제가 설거지를 준비하려 일어섰다는 말은 지금 당장 일어섰다는 말입니다.


막상 싱크대 앞에 서니 어떻게 해서든 설거지를 미루고 싶었습니다. 손에는 고무장갑 대신 여전히 핸드폰이 들려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핸드폰을 오래 붙들고 싶은 맘에 시계어플을 켰습니다.


‘오 분 후엔 설거지를 해야지’

오분 타이머를 맞춰놓고선 이것저것 동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띠리리리리’ 오분이 지났다며 타이머가 울렸습니다.


‘삼 분 후엔 설거지를 해야지

삼분 타이머를 다시 맞춰놓았습니다. 그 후엔 이 분. 다시 일 분. 끝내 삼십 초짜리 타이머를 만지작거리다가 포기했습니다. 삼십 초로 무얼 더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십 초, 십 초를 추가하며 타이머를 설정해 놓을 순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물러설 곳도, 핑곗거리도 없는 저는 핸드폰을 놓아두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은 고무장갑을 오른손에 찰 때였습니다.


“뭐야 이거”

너무 황당한 나머지 머릿속에 있던 단어가 육성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물이 들어간 것인지, 구멍이 난 것인지 고무장갑 속에 물이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저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설거지하기 싫다.’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겠다고 말한 상황.


‘진짜 하기 싫다.’

그래도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것이었습니다. 이미 약속을 했어도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해야 했기에 고무장갑을 오른손에 낀 채 수습방안을 고민했습니다.


‘바꿔서 낄까 말까.’

몇 초의 고민 끝에 그냥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착 달라붙어 떨쳐내기 힘든 고무장갑을 벗고 어딘가 숨겨져 있을지 모를 고무장갑을 찾아 나설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고무장갑을 찾아도 문제였습니다. 오른손용인지 왼손용인지 확인하고 오른손의 물기를 말린 후에 다시 차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귀찮았기 때문이죠. 결국 축축하면서 첨벙첨벙하는 기분을 그대로 두고 나머지 왼손에 고무장갑을 꼈습니다.


‘!?’

아까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온 상황이라면, 이때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말을 잃은 상황이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 남은 왼손 고무장갑도 꽝이었습니다. 심지어 오른손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은 상태. 갑자기 의욕이 땅속으로 지하로 처박혀 버렸습니다.


‘아 하기 싫다.’

처음 들었던 생각이었고,

‘아 진짜 하기 싫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이었습니다.


‘아니 고무장갑에 물이 들어갔으면 버리던지 해야지’

들을 리 없는 아내에게 전달될 리 없는 툴툴거림으로 최대한의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하지 말까?’

이런 상황이라면 아내도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잠깐 가졌습니다.

‘이 정도라면 이해해 주겠지.’라던 생각은 ‘나라도 이 정도의 상황이면 이해를 해줄 거야.’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핑곗거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한 개보다는 두 개가 더 나으니까요. 아직 축축한 고무장갑 안에 두 손이 들어가 있는 상황. 이런 꿀렁꿀렁한 기분을 유지한 채로 핑곗거리를 이리저리 찾다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슬슬 시작해야겠지?’

그냥 운명에 굴복하기로 했습니다. 한다고 했으면 해야만 하는 것이 순리인겁니다. 저는 운명도, 순리도 맞설 용기가 없었거든요. 고무장갑인지 물장갑인지 뭔가를 낀 채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아…하기 싫다.’

세제를 수세미에 짰습니다.

‘아 하기 싫다.’

수세미로 그릇을 닦았습니다.

‘아..하기 싫다.’

그릇들을 헹궜습니다. 이렇게 하기 싫다 세 번에 설거지가 모두 끝나버렸습니다.


뭐 결혼생활이 이런 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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