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는 것을 염려하지 마세요

by 아고루포나

<염려하는 것을 염려하지 마세요>


건강염려증이라는 것은 매우 지독한 증상입니다.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죠. 알려진 치료법 또한 전무합니다. 게다가 대대로 대물림되기도 합니다. 저의 아버지와 제 경우처럼 말이죠.


저희 아버지는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하십니다. 특히 전염성이 높은 질환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네. 감기를 말하는 겁니다. 아버지는 남에게 전염을 시키는 것도 싫고 본인이 전염당하는 것은 더욱 싫어하십니다. 코로나 때 알코올 손 소독제 많이들 사용하셨죠? 제 아버지는 일찍이 손 소독제를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코로나 때 등장한 높은 수준의 방역을 이미 일찍이 몸소 시행하고 계셨던 것이죠.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 일까요? 저 또한 건강염려증이 있습니다. 문제는 제 경우 모든 분야를 염려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강염려증의 DNA 가 돌연변이를 일으켰다고 할까요? 감기류에만 반응하던 아버지의 염려증이 제 안에서는 거의 모든 증상을 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심각하게요.


군대에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걸릴법한 감기에 저도 걸렸는데, 꽤나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색의 콧물이 나오는가 하면, 목이 잠겨서 말소리도 내기 힘들었죠. 밥을 못 먹어서인지 몸에 힘이 없어 열을 재보았습니다. 39.9도. 40.0도에 0.01도 부족한 39.9도! 이 정도면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아프고 아무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제 경우는 약간 힘이 없다 뿐이지 머리가 아프거나 몸살이 있거나 하는 증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보통의 경우에는 간단하게 해열제를 복용하겠죠. 그런데 저와 같은 건강염려증의 환자에게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감각신경계가 손상됐다.’

네. 39.9도의 초 고온인데도 불구하고 당연히 느껴야 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곧 신경계의 손상을 의미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그렇게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오한이 들며 손발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줄 알았던 감각이 돌아온다는 것은, 곧 감각신경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저 같은 건강염려증 환자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시작됐다.’

뭐가 일어날진 모르겠지만, 문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감각신경이 마비 또는 손상된 것을 이미 사실로 치부한 건강염려증환자에게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마비된 신경을 초월하는 신체의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건강염려증환자는 이 단계에서 119를 부르게 될 겁니다. 물론 119에 전화해서 신경계가 마비되었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죠. 그냥 극심한 초고열로 고통받고 있다는 정도의 말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 있던지라 그냥 의무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뭐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약 먹고 열 내리는 일반적이 상황이었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학생 때의 일이었습니다. 한창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딱밤 때리기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사고 있을 때였죠. 저녁 10시경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양손으로 딱밤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흉내를 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뚝”

딱밤을 때리려는 오른쪽 중지 관절에서 갑자기 ‘뚝’ 하고 나서는 안될 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손가락에서 그런 소리가 날 줄은 몰랐거든요. 뭔가 문제가 있나 싶어 요리조리 보고 있는데 해당부위가 부풀어 오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손가락을 못쓰게 되지 않을까?’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건강염려증이 도져버린 것이지요. 거기에 불안증이 가세하고, 초조증이 더해졌습니다. 이쯤 되면 어찌할 수가 없었죠. 네. 엄마를 불러야 했습니다.


“엄마”


“왜?”


“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병원? 무슨 병원?”


“정형외과에 가려고.”


“갑자기? 어디 다쳤어?”


“손가락이 부러진 것 같아.”


“손가락이? 뭐 하다가?”


“딱밤 때리다가.”

그 찰나의 순간 스친 엄마의 눈빛은 십 년이 더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부딪혔어??”


“그냥….. 혼자서 연습하다가”


"....."

한 동안 말이 없었던 엄마가 다시 말을 꺼냈습니다.


“지금 몇 신데 병원을 가?”


“응급실에 가려고,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


“그냥 자!”


네. 엄마가 자라고 했으면 자야 합니다. 별수 있나요? 그냥 자고 그다음 날 동네 병원에 갔죠. 물론 병원에서 손가락에 감각이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다치셨어요?”

“……”

건강염려증환자는 건강을 염려하는 것일 뿐 멍청한 것은 아닙니다. 의사의 질문에 정직하게 공중에 딱밤을 휘두르다가 다쳤다는 대답을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아무튼 의사도 딱히 어떤 대답을 바라고 질문한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보던 의사가 증상에 대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대가 늘어난 것 같네요. 손가락 깁스 하고 다음 주에 오세요.”

뭐 이런 것이죠. 건강염려증 환자의 일상입니다.


건강염려증의 경우 정부의 공식 인증이 존재합니다. 나라에서 이름 세 글자를 넣어 인증서를 발급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비슷하긴 합니다. 10년 정도 전 늦가을 즈음 감기에 걸렸는지 며칠간 기침과 재채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증상도 심각한 데다가 아버지가 가족에게 옮기지 말라고 짜증을 내시는 바람에 근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죠. 처방받은 약이 효과가 없었는지 여러 번 갔는데도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을 때까지 계속 다녀보자는 생각에 꽤 오래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뭐 병원에서도 환자가 온다는데 굳이 마다할 리가 있었겠어요? 그냥 나을 때까지 다녔죠. 게다가 약 지어왔다는 말로 아버지의 짜증을 누그려 트릴 수도 있고요. 그렇게 꽤 오래 다녔었는데, 연말즈음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건강보험공단’이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병원 이름을 말해주며 여러 차례 다닌 것이 맞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다닌 게 맞으니 맞다고 하긴 했는데, 요점은 건강보험공단에서 해당 병원의 부정수급을 의심할 정도로 많이 다녔다는 것이었죠. 네. 무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건강염려증 인증을 받은 셈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증상은 대물림을 하기도 합니다. DNA에 각인이 되어 유전되는 유전병은 아니지만, 생활하면서 옮는다고나 할까요? 물론 저와 같이 자란 제 동생은 그러질 않지만요.

아무튼, 저는 아버지로부터 건강염려증을 물려받았습니다. 이 굴레는 지독해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죠. 아버지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께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병원도 많이 없었기에 반 강제적으로 건강염려증이 치료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건강염려증이 도질 때마다 왕진을 부르기도 뭐 하지 않겠어요? 아무튼 아버지로부터 이 증상을 물려받은 건강염려증 중증 환자인 저에게 최근에 또 하나의 염려거리가 생겼습니다.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죠.

건강염려증을 물려주게 생겼는데 염려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건강염려증이 있다고 딱히 불만을 가지진 않았지만, 아이는 또 다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냥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라고 하면 아이가 얼마나 억울해할까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식에게 꽤나 미안합니다. 먼 훗날 아이가 커서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더욱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죠.. ‘사실 나도 피해자다’라고 아이에게 말해봤자 납득을 할 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이 운명인걸.

그래도 제 아이는 저 같은 중증 환자보다는 좀 더 나은 경증정도로 그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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