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비버는 안 되는 겁니다(2)

by 아고루포나

<저스틴비버는 안 되는 겁니다(2)>


제 아내는 별명을 지어 줄 요소가 넘쳐나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가깝고 잘 알기 때문일까요? 같이 생활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개씩 떠오르는 별명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내에게 별명을 지어 줄 때에는 좀 더 조심하게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평온한 결혼생활이 심각해질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아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저와 아내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 꽤나 자세히 파악을 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남들보다는 좀 더 과감한 별명을 시도해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기준 허들이 좀 낮은 편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좀 아니다 싶은 별명들이 있습니다. 공감과 무례 사이의 그 좁은 경계에서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인 것이지요. 그럴 때면 살짝 편법을 쓰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아내에게 별명을 지어 줄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귀여운 느낌의 어미를 사용하는 것으로 대부분 '-삐' 형태의 단어로 된 별명입니다. 어미가 '삐' 로 끝나면 왠지 입에 착 달라붙기도 하고 귀여운 느낌이 나서 제가 자주 이용하곤 합니다. ‘족저근막염’이라는 거칠고 삭막한 별명보다 ‘족저근막삐’라는 별명이 귀여운 느낌이 드는 게 아무래도 낫지 않겠어요? 살짝 불쾌할 수도 있는 별명도 ‘–삐’의 앞에서는 귀여워져 버리고 맙니다. 반칙이지요.


아무튼 결혼생활동안 제가 아내에게 지어준 별명은 십 수개는 될 겁니다. 그중에는 의미가 중복되거나 비슷한 별명들을 제외하고, 당사자와의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승낙을 받은 별명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그때그때다름삐.

첫 번째 별명부터 좀 생소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별명이 이따위라고? 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테지요. 이것이 어떻게 별명일 수 있냐라고 하시겠지만, 앞서 설명한 것들 중 (1)명사이며 (2)직관적이다 의 룰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관적인 별명입니다. 대충 당시에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는 쉽게 눈치채셨겠지요. 저로서도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별명을 지어 주면 좋았겠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단어나 문장구절이 생각나질 않았습니다. 거기에 -삐의 어미를 붙여 버렸으니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아내가 좋아하는 별명 중 하나입니다. (정말 -삐 는 만능입니다.)


아내는 선택을 최대한 미루는 타입입니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가능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선택을 미루곤 하죠. 이런 경우를 많이 봐 왔기에, 저는 과거에 있었던 같은 상황에서의 선택을 상기시며 재촉을 합니다. 그럴 때면 아내는 그때그때 다르다며 최대한 선택을 미룹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비가 세차게 오는 어제저녁, 아내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습니다. 지난달 같은 상황에서 국수를 먹자고 했던 아내가 기억나 국수를 먹을 것을 권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때그때 다름 삐였습니다. 아내는 그때그때 다르다며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겠다고 했죠. 이런 식입니다. 그 외에도 이런 상황은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때그때다름삐는 자기 편할 때만 튀어나와 선택을 최대한 미루도록 아내에게 바람을 불어넣죠. 그래서 그때그때다름삐입니다.


2. 불불삐.

불불 하면 뭐가 생각나시나요? fire의 불도, 한자의 不도 아닙니다. 방구를 불불대서 불불삐입니다. 그 당시 아내의 방구는 '불불'소리가 났습니다.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때엔 확실히 '불불'소리가 났습니다. 별명을 지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죠. 바로 '불불삐'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아내도 거절할 명분이 없었어요. 일단 ‘불불’ 방구를 뀐 사람은 아내이고 당한 사람은 저이기 때문이죠. ‘불불’ 소리가 나는 방구를 뀐 사람은 응당 그래야 합니다. 물론 그 이후 ‘불불’소리를 들은 적은 없지만, 그 정도의 각오 없이 ‘불불’방구를 뀌어선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가끔 아내가 방구를 뀌거나, 그때 그 ‘불불’방구가 생각나면 불불삐라고 부르곤 합니다.


3. 따로국밥삐

이때의 상황은 그때그때다름삐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집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곤 합니다. 지난주는 아내가, 이번 주는 제가 번갈아가면서 장을 보는 식이죠. 그런데 아내가 장을 볼 때면 부부는 항상 붙어 다녀야 한다며 저에게 같이 동행하길 원했습니다. 뭐 집에 있어봤자 딱히 할 것도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라 같이 가곤 했는데, 문제는 제가 장을 볼 때였습니다. 저도 아내에게 동행을 요구했죠. ‘부부동반 삐’다 하면서요. 그런데 이때의 아내는 ‘그때그때다름삐’였습니다. 부부는 따로도 있어봐야 한다며 저와 장을 같이 보는 것을 거부했죠. 그래서 붙여준 게 따로국밥삐입니다.

사실 따로삐가 더 맞는 단어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따로삐는 어감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귀여운 느낌도 없고 뭔가 삭막하달까요? 제가 느끼기엔 그랬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따로국밥삐입니다. 구수한 느낌이 들면서도 본래의 의미를 정확히 계승한 단어이죠. 따로국밥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내의 별명입니다.


4. 나무늘보삐

제 아내는 선택도 느리지만, 행동은 더 느립니다. 행동이 느려서 선택이 느린 건가 싶기도 하고 선택이 느려서 행동이 느린가 싶기도 합니다. 조급증이 있는 제가 보고 있자면 조급증에 답답증이 생길 정도이지요.

거기에 외모 또한 나무늘보를 닮았습니다. 나무늘보의 얼굴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얼굴은 둥그렇고 눈은 똥그랗죠. 딱 봐도 이놈 느리게 움직이겠구나 싶은 외모입니다. 빠릿빠릿하게 생긴 개코원숭이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얼굴이지요. 제 아내가 그렇습니다. 얼굴이 둥글 눈이 동글. 나무늘보이지요.

그런 이유에서 나무늘보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아내도 한 번 듣고는 허허 웃더라고요.


별명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대신할 수도 없거니와 대표성을 지니고 있지도 않습니다.

바지를 내려 입은 사람들이 전부 저스틴비버가 아닌 것처럼,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전부 박상민이나 엘튼존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별명이란 것은 수많은 조각 중 하나입니다. 이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제 아내의 별명 또한 수많은 조각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불삐라고 해서 매일마다 방구를 불불 거리진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내가 꼭 이점을 강조하라고 해서 덧붙입니다.


별명짓기는 제가, 더 나아가서는 저희 부부가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도 가족의 또는 친구의 별명을 지어주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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