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비버는 안 되는 겁니다(1)

by 아고루포나

<저스틴비버는 안 되는 겁니다(1)>


사람은 누구나 하나 정도는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없으시다고요? 그럴 리가요! 분명히 있습니다. 잘 찾아보세요! 그것이 설령 남들보다 못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며 그만 인 것이죠.

저의 경우는 별명짓기가 이에 해당합니다. 별명짓기 대회라던가 채점 매뉴얼 같은 게 있지 않는 이상 객관적으로 어떻다 말할 순 없지만, 제 안에서는 이쪽 방면의 능력치가 다른 것에 비해 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 인 것이죠.


별명을 짓는다는 것은 꽤나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성인의 별명짓기는 그런 것입니다. 어릴 때야 이름 위주로 짓거나 외형적 특징 위주로 별명을 지었지만, 성인인 된 지금 그런 식으로 별명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자칫 손가락질을 받거나 유치하다는 비아냥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별명이란 것이 원래 유치해야 재미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쪽저쪽 신경을 쓰며 아주 미세한 경계에 설 수 있는 완급조절이 필요합니다.


고작 별명짓기 하나로 왜 이리 유난을 떠느냐고 생각하시겠지요? 별명짓기는 잔뜩 유난을 떨어야만 합니다. 유난을 떨지 않으면 성공한 별명짓기가 될 수가 없습니다. 성인의 별명짓기란 그런 것입니다.


별명은 명사가 대부분입니다. 무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주변에 부사의 별명을, 형용사의 별명을 가진 사람을 본 적 있으신가요? 저기 꼬마아이의 별명이 ‘귀여운’ 이라던가 옆집 노인의 별명이 ‘늙은’이라고 한다면 이상하지 않겠어요? 근처 과일가게아저씨의 별명이 ‘엄청’ 이라던가 같은 반에 ‘매우’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래서 대부분 명사입니다. 명사가 아닌 별명은 흔치 않습니다.


별명은 또한 직관적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여유를 두는데, 직관성이 조금 떨어진다 해도 설명을 했을 때 어느 정도 공감을 이끌어 낸 다면 합격입니다. 허들이 조금 낮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어떤 이미지인가요? 로봇인 만큼 약간 인간미가 없고 무뚝뚝한 이미지일 수도, 또는 아놀드 슈왈제네거 같은 근육질의 이미지를 떠올릴 겁니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꼈다는 이유로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고 하면 어쩌시겠어요? 음… 이라던가 좀…이라던가 아무튼 이러한 별명을 만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직관성도, 공감대도 떨어진 전형적으로 실패한 별명인 것이죠. 별명짓기 지침서가 있다면, 실패한 별명짓기의 예로 나올 정도입니다. 이렇듯 별명짓기에 있어서 직관성과 공감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머러스함 또한 별명이 갖춰야 할 요소입니다. 별명짓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웃음이니까요. 단어자체가 포함하는 의미 또는 상대방과의 공감대 형성으로 인한 유머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비난과 혐오를 위해 별명을 지어주는 경우가 있나요? 없지요. 오직 웃음, 소소한 행복을 위한 별명짓기만 있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별명짓기 입니다.


별명의 구조에 대한 고려가 끝났다면 이제는 상대방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공한 별명짓기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배경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별명을 받아들일 사람의 나이는 물론이고, 국적, 관심사, 직업, 나와의 관계까지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자신들이 속해있는 집단에 호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관심분야는 물론이고, 지식의 편중도도 비슷하기 때문이죠. 물론 제 추측일 뿐입니다만, 직장동료들 사이에선 또는 같은 직종의 사람들은 그들이 자주 쓰는 전문용어로 된 별명을 꽤나 사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무직 동료들 중엔 엑셀이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꽤나 있을 겁니다. 군인 중엔 탄창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들이 꽤 되겠지요. 잘은 몰라도 의사들 사이에서 매스라는 별명 또는 겸자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법도 하지 않나요? 법조인들 사이에선 어떨까요?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법전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종종 있지 않겠어요?


우리나라는 대대로 유교적 색채가 강한 문화권이라 나이에 대해서도, 관계에 대해서도 신경 써야 합니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죠. 가령 장년에 접어든 직장상사의 바지춤이 조금 내려갔기로서니 ‘저스틴비버’라고 별명을 붙여준다면 난감합니다. 이는 공감을 얻기는커녕 무례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죠. 욕이나 안 얻어먹으면 다행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MC해머’라고 붙여주어서도 안됩니다.

저는 직장상사에게는 별명을 지어주지 않는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득보다는 실이 많겠지요. 별명짓기란 그런 것입니다.


국적 또한 중요합니다. 국적에 따라 관심사, 알고 있는 지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선글라스를 자주 쓰는 영국인에게 박상민이라고 별명을 지어준다면 공감을 얻을 리 없습니다. 장군의 아들?이라고 되묻는다면 난감하겠지요, 이 경우에는 엘튼존이라는 별명이 더 나아 보입니다. 별명짓기는 그렇게 굴러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별명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이 없어야 합니다. 성인의 별명짓기란 그런 것입니다. 받는 사람도, 지어주는 사람도 웃어넘길 수 있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상대방의 콤플렉스를 언급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의라 하더라도, 그것을 건드린다는 것은 별명짓기의 금기에 해당하죠. 별명을 지어주는 사람의 의도는 완전히 무시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선의인지 불의인지는 별명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이 결정을 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이처럼 별명 짓기란 상대방에게 온전히 집중해야만 하는 고된 작업입니다. 제삼자가 끼어들 틈이 전혀 없는 그러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다 고려하여 상대방에게 온전히 집중한다 하더라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방과 나 사이에는 분명 간극이 존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 제가 파악한 정보는 타인이 생각하는 기준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쾌해 할 수 있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정말 가까운 지인 아니면 섣불리 별명을 지어주기가 어렵습니다. 매우 가깝고, 잘 알고 있어야 비로소 지어줄 마음이 생깁니다. 이를테면 저의 아내 같은 사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