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서 달큰한 양념 내가 나요
원서동 한식 공간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계신 조희숙 셰프님.
늘 가장 따스하고 가까운 마음으로 보듬어 주시는 어르신이시다. 운경재단의 이미혜 이사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셰프님과 함께 햇살 좋은 날, 효자동 두오모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가방 안에서 작은 반찬통을 꺼내 스윽 내미신다.
나오기 전에 바로 무쳐왔다며 손에 아직 양념 내가 묻어나신다길래 코를 가까이 대고 향을 들여 마셨다.
달달한 들기름과 참기름 내가 난다.
작은 피클용 오이를 소금에만 절여 양념에 무치셨다며
설탕과 물엿을 일체 넣지 않았다고 말씀해주신다.
나의 당뇨 상태를 처음으로 캐치하고 알려주신 분이 바로 조 셰프님. 태국의 큰 음식 행사를 위한 촬영을 하다가 물을 마시고 또 마셔도 목이 마르다는 나에게 “김 대표, 병원에 한 번 가봐. 당뇨 같은데…”라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주치의 선생님께 혼이 나면서
바로 당뇨인의 삶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
그렇게 내 인생 마흔 살,
크나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작은 사이즈의 오이를 소금에 절여
좋은 고춧가루, 다진 파, 참깨, 들기름으로만
양념을 하신 고소하고 서늘하게 어른스러운 맛.
어쩜 이렇게 맛있을까.
새벽 7시에 눈을 떴다.
차가운 공기에 기관지가 심상치 않아
보리와 옥수수를 꺼내 편수 냄비에 보리차를 끓였다.
엊그제 현미와 햅쌀, 귀리와 울타리 콩으로 지은 밥을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더랬다.
당뇨인에게는 냉장, 냉동 보관을 한 밥을 추천하는 편.
이렇게 섭취를 하면 저항성 전분으로 변환되어 혈당 상승을 느리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냉장온도 1-4도 사이에 24시간 정도 보관을 하면 된다고.
다 떠나서 난… 솥밥을 해 먹는 터라 남은 밥 관리가 귀찮아서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조금씩 덜어내기만 해도 벌써 너무 아깝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게 제일 아까우면 안 되는데.
아, 보리 옥수수차에 토렴(?)한 밥에
이렇게 올려 한입 먹으면 조찬 미팅을 하는 회장님 같아진다. 하루 내내 정의로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맛이다.
조촐하지만 귀한 밥상이다.
다음엔 꼭 만드시는 법을 여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