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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분의 일 May 01. 2022

허구의 독립성

오은영 선생님의 화해라는 책에서는 허구의 독립성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실은 의존적인데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걸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여행도 혼자 다니고, 외국 생활도 혼자 해봤다. 친구를 먼저 사귀려고 노력해본 적도 없다.

뭐든지 혼자 결정하고 실행하는 제멋대로 인간이다.

누가 보면 독립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다. 근데 사실이 아니다.


나는 쿨한 척 하지만 쿨하지 않다. 대담한 척 하지만 사소한 걸로 의기소침해지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척하지만 사실은 남 눈치를 보며 살고 혼자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척 하지만 힘들었던 기억을 일부로 꺼내보며 엎드려 울기도 한다.


사실 나는 너무나도 찌질한 인간이다.


나는 자존심 다 버리는 사랑을 하고 싶고 힘든걸 힘들다고 말하고 싶고 남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고 싶고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며 살고 싶다.

참 말은 쉽다.


어쨌든 인간은 다면적이어서 의존적인 면과 독립적인 면이 둘 다 공존한다. 그 두 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이는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 마치 어린이가 장래 희망을 상상하듯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미래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는 꺼내볼 수 있는 추억거리가 많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여행도 그중 한 가지이다.

근데 어쩌면 나는 여행을 그렇게 까지 좋아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으면 국내에서도 가능한데 굳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까지 가서 주변을 원천 차단하는 이유는 그만큼 주변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이지 않을까?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하지만 역시 인종차별은 싫다. 유럽의 거리는 아름답다. 하지만 재밌는 건 별로 없다. 이국적인 음식도 맛있다. 하지만 역시 나는 한식이 최고다.


일본에 살 때 나는 잠시 셰어하우스에서 살았었는데 유럽 국적 룸메이트들이 많았다.

문화적 차이는 분명 존재했지만 당연히 그들도 사람이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들 걱정들을 가지고 있었고 미숙한 점도 있고 어른스러운 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그저 한국에 있는 나의 또래들과 같았다.


나는 순진하게도 호의라는 건 대가가 없는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룸메이트들은 나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어줬으니까.

외국인인 나를 외국인인 그들이 아낌없이 도와줬다. 사실 우린 아주 어렸고 잃을 것도 없었다.

한없이 경험하고 채우기만 해도 괜찮을 나이였다.

사회생활을 하며 호의에는 대가가 따른 다른 걸 깨달았다.

당시 우리는 때 묻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호의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니는 늙어도 그때와 같은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미 나는 변했으니 불가능할 것이다.

누군가의 호의에 의심하는 건 필요하다. 그래도 일단 고맙게 받아들여보자.

허구의 독립성을 버려보자.

대가를 원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내 안목을 한 번 믿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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