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순 May 11. 2022

10-3. 52주週


시간에 흔적 내기



스마트폰 캘린더 애플리케이션을 봅니다. 매일의 날짜가 일주일씩 가지런히 제자리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왼쪽 구석을 보면 올해의 첫 번째 주(週, Week)라는 것을 알려주는 숫자 1부터 시작해서 일 년 중 몇 번째 주인지를 보여주는 숫자가 있습니다. 365일이라면 일 년은 쉰두 번의 일주일을 만나게 됩니다. 52라는 숫자가 설레게 합니다. 이 52주 동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가만히 있어도 지나버리는 이 숫자에 어떤 보람의 흔적을 만들까 생각합니다.


매주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글짓기를 합니다. 보통은 바삐 지내다 보니 토요일쯤 한 주를 돌아보면서 궁금했던 것을 생각하여 글짓기를 합니다. 궁금해서 글짓기를 합니다. ‘왜?’라는 것이 궁금하고, ‘어떻게?’라는 것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라는 것도 궁금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혼자 질문을 던져보고 해답을 찾아보면서 슬슬 적어봅니다. 글짓기는 나의 것이지만, 이것이 읽힐 땐 다른 사람의 것이니, 그 정도의 고민을 즐겨서 합니다. 몇 시간에 걸쳐 몇 장을 쓰고, 쓱 넘겨보면 기분은 좋습니다. 내가 또 이렇게 무엇인가를 끌어내어 남겼구나, 흐뭇한 착각입니다. 글짓기가 처음엔 쉽지 않습니다만, 그다음 고쳐 쓰는 작업이야말로 정말 힘듭니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고치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를 고치면서 또 몇 번이고 생각을 다듬고 다듬습니다. 점점 읽기가 좋아집니다. 다른 사람들도 읽기가 편해지고, 알아채기가 쉬워집니다.


영어공부도 합니다. 일주일에 5일만 매일 하고, 빼먹은 게 있으면 토요일에 잠시 보충합니다. 한 단원이나 스텝을 일주일 단위로 정해 놓고, 테스트를 하며 성취감도 조금 즐겨봅니다. 왜 영어공부를 하는지 목적은 아직도 불분명합니다. 일부러 이유를 가져다 붙이지 않으면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외국인과 웃으면서 뭐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영어로 쓰인 길고 짧은 글을 읽어 내리는 모습도 부러웠습니다. 부러움밖에는 딱히 공부의 끌림이 없었습니다. 학원에 다닐 수는 없고, 매일매일 어떻게 해야 영어공부를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8시나 9시부터 1시간은 공부합니다. 기왕 하기로 한 것이니 열심히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시간도 그렇고, 진도도 안 나가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이거 안 한다고 수입이 줄거나 회사에서 퇴직하라는 것도 아닌데. 그때마다, 언젠가 쓸 일이 없어도 좋아, ‘하고 싶은 거였잖아’라고 넘깁니다. 공부가 고민만 하고 있을 것은 아니라고, 쉽게 넘기고 있습니다.


연초에 어느 대형 서점의 유료 회원에 가입했습니다. 좋은 책 정보를 매일 이메일로 안내하고, 매월 1권을 고르면 책을 보내줍니다. 그리고, 매월 베스트셀러 저자의 강연에 참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달 1권의 책을 안 읽을 수 없습니다. 사실 한 달에 한 권 읽기보다 일주일에 한 권 읽기가 더 쉽습니다. 안 하다 하는 게 더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권씩 읽기로 했습니다. 물론 가벼운(?) 책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좋은 이야기다 싶으면 그 페이지를 접어놓습니다. 이런 식으로 읽으면서 접으면 대략 스무 페이지 정도는 되니, 그것만 다시 챙겨 읽어 봅니다. 좀 무거운 책은 일주일 만에 볼 수 없습니다. 일단 5~600페이지 정도이고, 아무래도 전문 서적이니 밑줄 치면서 공부하듯 읽습니다. 특히, 저자가 몇 년간 집필한 책은 후다닥 읽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정도로 공부하면서 몇 번 봐야 이해가 됩니다. 이런 두 종류의 책을 두루두루 읽다 보면 일주일에 한 권을 읽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읽고 난 후 책꽂이에 놓아보면 보기가 좋습니다. 의미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 지식, 경험, 방식을 책으로 알게 되는 과정이 참 신기합니다. 게다가 저자 특강에 참석하면 글자로 보는 것하고 직접 얼굴 보면서 저자의 기운을 느끼고, 소리를 듣는 것은 또 다른 호기심을 채워줍니다. 뭘 꼭 배운다는 것보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나와 그렇게 다르구나, 그 사람과 나의 내공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확인해 보는 장場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그러는 줄 절대 모릅니다.


일요일이면 높지 않은 근처의 산에 다녀옵니다. 집에서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 5~6시간 정도 걸리는 멀지 않은 곳입니다. 쉬지 않고 오르면 뻐근함은 있어도 무리함이 없는 적당한 코스입니다. 봄엔 꽃이 피는 게 좋고,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좋고, 가을은 낙엽 부딪치는 소리가 좋고, 겨울엔 밟히는 눈에서 나는 소리가 좋습니다. 오르고, 내려가고, 걷고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생각이란 걸 막고, 그냥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들으려고 합니다. 날씨가 안 좋으면 안 갑니다. 대신에 아무것도 안 하고 눕습니다. 누우면 허리가 쫙 펴지는 느낌? 이 느낌 참 오랜만입니다. 옛말에 선비는 눕기를 삼가라더니, 어쩌다 한 번의 쉼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습니다. 같은 산을 늘 다니니까, 다이어리에 몇 번을 다녀왔는지 표시합니다. 몇 번만 더 가면 100번째입니다. 그땐 가족들과 재미난 기념식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내년엔 동네 산 오르면서 한 달에 한 곳씩 국립공원을 다녀볼 계획입니다. 산도 있고 해상공원도 있습니다. 괜찮은 계획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글짓기, 영어공부, 산 다니기 이런 것들을 습관이 되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우선, 다이어리에 표시합니다. 물론 회사의 업무를 배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한 달 30일 매일 4가지 이상의 업무가 채워집니다. 회사에서 함께 해야 할 일이 최우선으로 정해지고, 꼭 완료해야 하는 일정이 정해지면 거꾸로 중간 확인, 시작하는 날이 정해집니다. 그리고 나면 혼자서 하는 업무들이 일정에 채워집니다.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먼저 일정을 차지하고 나서야, 하고 싶은 것들의 일정을 넣습니다. 규칙적인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규칙이 없는 것은 좀 여유로운 날에 넣으면 됩니다. 위에서 말한 글짓기, 영어공부, 산 다녀오기가 여의치 않으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가족여행이나 예정된 외식입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기분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상적인 것들로, 치과나 내과, 마트에 가는 것들이 배정됩니다. 이러다 보면 한 달의 일정이 빼곡합니다. 시간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이렇게 만든 계획이 전부 그대로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계획 잡는 것을 매일매일 반복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당기기도 하고, 미루기도 합니다. 계획대로 안 된다고 싫증을 내지 않습니다. 계획이란 게, 실천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계획을 반복해서 세우기야말로 실천을 위해 중요합니다. 나만의 시간은 나만 만들 수 있습니다. 좀 부지런을 떨면 시간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너무 부지런하지 않아도 계획을 짜보면 시간이 생깁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글짓기는 동네 도서관을 주로 이용합니다. 거긴 참 편안한 곳입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열심히 뭔가를 공부[탐구]하는 사람들만 있는 분위기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기운을 느낍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자극이 됩니다. 이렇게 나에게 익숙한 공간을 나름대로 만듭니다. 그래야 집중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 안 된다 안돼! 미치겠다!! 벽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 그 벽을 넘기도 합니다. 그래도 못 넘으면 거기까지만 합니다. 뭔가 나만의 ‘규칙’을 만들고 거기에 나를 던져, 단련시키는 것이 재미만 있겠습니까? 굵은 스트레스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신기한 것이, 하나씩 하나씩 풀릴 때마다 기분은 좋습니다. 그럼 그만입니다.



시간 계획은 재미가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2. 회의, 회식. 우리는 왜 이렇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