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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개비꽃 Aug 15. 2023

내 평생 가장 잘못한 일

                         

 흔히 ‘내 평생’이란 말 뒤엔 ‘가장 잘한 일’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가장 잘못한 일을 쓰고 싶다. 팔십 평생 사는 동안 이토록 어리석은 적이 없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런 후회와 자책과 한(恨)을 그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어서다. 본인이 당하지 않고서야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거니 치부하기 쉽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아버지는 은퇴 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샌프란시스코 땅을 밟고 그 후 LA에 정착한다. 교회를 중심으로 믿음을 지키며 나름 이민 생활에 익숙해진다. 2남 4녀 자식들 중 나 혼자만 한국에 남고 언니와 동생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 부모님이 생각나면 아무 때나 찾아뵐 수 있는 형제들이 은근히 부러울 때가 있다. 

 나는 고작 큰맘 먹고 몇 년에 한 번씩 갈 뿐이다. 어머니는 2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잘 지내시다가 5년 전 허리를 다치곤 힘들어하신다. 양로병원에 보내드리기 싫어서 주중엔 LA에 사는 막내여동생이 돌봐드리고 주말엔 어머니 혼자 지내신다. 5년 간 주말부부로 끝까지 기다려 준 제부가 고맙기만 하다.

 뒤돌아보니 내가 어머니를 마지막 뵌 때는 2016년이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식사를 챙기지 못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훌쩍 떠날 수가 없다. 남편은 다녀오라고 하지만 왠지 주저앉게 되고 누군가 도와줄 이를 찾던 중이다. 점점 기력이 약해지는 어머니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맘이 급해진 터에 남편마저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금년 초 어머니의 병세가 위급해진다. 병원과 양로병원을 오가며 긴급 상황이 되자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자녀, 손자손녀, 증손까지 어머니와 할머니 곁에 모여들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도 잡고 안아드린다. 추워하실까 봐 털모자, 담요, 양말과 입에 맞는 음식을 갖고 와서 함께 기도하고 찬송 부르면서 즐겁게 해드린다.  

 이젠 내가 꼭 가야 한다. 나만이 오랜 세월 어머니를 못 만났다. 마지막 임종이라도 지켜보면서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놓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남편을 간병하느라 지쳤는지 어지럼증으로 몇 차례나 응급실을 들락거리고, 잠을 못 자 뜬눈으로 밤을 새니 입맛도 없어지고, 지하철로 외출한 날엔 입술이 헤어지곤 한다.

 1월말 미국행 표를 끊는다. 가는 날까지 시간이 좀 있어 몸을 추스를 셈이다. 영상 통화에서 어머니는 “안 와도 괜찮아. 네 몸 챙겨야지…”라고 하시며 끝내 눈물을 훔치신다. 천지가 진동하듯 폭풍 오열을 하신 적도 있다. 언니 형부는 지금 그 몸으로 어떻게 오려고 하느냐면서 와서 더 아프면 누가 돌봐줄 사람도 없다고 극구 말린다. 게다가 열두 세 시간 동안 비행기 탈 일이 자신 없어 결국 티켓을 취소하고 만다.  

 TV를 켜니 어떤 분이 이렇게 묻는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기 전 3일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대답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을 만나 뵙는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하는 말 같아 가슴을 움켜쥔다. 

 그래! 엄마한테 가자.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시는데… 내 등을 따스한 손결로 쓰다듬으시며 다 괜찮아지니 힘내서 살거라 하실 텐데… 포근한 어머니 품에 안겨 실컷 울고 싶은데… 설마하니 내가 어머니보다 더 몸이 약하랴. 더 고통이랴. 아니야. 어머니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바위에 깔린 채 숨도 제대로 못 쉬시는데…

  2월12일자 티켓을 끊는다. 잦아드는 어머니의 숨결을 느끼노라면 하루가 1년 같다. 12일 인천 공항에 가야할 날 아침, 가족 채팅방을 연다. 아! 올케의 문자가 올라와 있다. 믿어지지 않아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확대해 본다. ‘어머님이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옆방엔 사위가 나를 일찍 공항에 데려다주기 위해 와 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흐느끼다가 정신을 차린다. 사위에게 입을 여는 순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꾹 참고 공항 길에 나선다. 차창 밖은 온통 회색, 늦겨울 옅은 안개가 나목들을 휘감고 있다. 슬픔과 허무가 가슴을 파고든다. 비행기 안에서 줄줄 눈물만 흘린다. 이대로 어머니 계신 곳까지 푸른 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갔으면.  

 어머니는 2월11일 숨지시기 몇 시간 전에도 맑은 정신으로 나와 영상 통화를 하셨다. 지금 어머니 뵈러 가고 있는 중이니 조금만 더 힘내고 기다려주시라고 목청껏 전했다. 어머니는 눈을 뜨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얼마 후 목사님과 교회 분들이 오셔서 임종예배를 드리자 아멘! 하셔서 잠 드신 줄 알았는데 그대로 가족들 곁을 떠나셨단다. 

 어머니는 늘 나를 ‘우리 서울 둘째딸’이라 부르신다. 임종 직전에도 우리 서울 둘째 딸이 곧 올 거라고, 꼭 올 거라고 하시며 기다리셨단다. 기력이 다 소진됐는데도 자꾸만 시계를 보면서 지금 몇 시냐고 다섯 번이나 물어보셨다고 한다.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면서 간병하던 언니와 동생이 더 가슴 아파했다.

 장례식 날, 어머니는 후리지아꽃 색 한복을 입으시고 자줏빛 관 속에 편안히 누워계셨다. 내가 드렸던 작은 나무 십자가를 손에 쥐고서. 어머니의 손은 예전처럼 따스했다. ‘어머니, 사랑해요.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내가 바친 상아빛 장미 향기가 어머니와 나를 감싸 안았다.   

 요즘 밤낮 없이 ‘하루만 일찍 갔더라면…’하고 입버릇처럼 되뇌며 산다. 하루가 천년이다. 아니 영원이다. 이 하루를 챙기지 못 한 것이 내 평생 가장 잘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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