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아워> 속 워크숍-2 '낭독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해피 아워> 속 워크숍만 정리해보자 두번째

by 으네

극 중 노세 코즈에 작가의 '수증기'라는 작품의 신작 낭독회가 열린다. 아직 낭독회를 가본 적은 없으나 이전 워크숍(중심이란 무엇인가)에 비해 상당히 클래식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담당 편집자가 사회를 보고 작가가 낭독을 하며 낭독 후에는 게스트와 대담을 한다. 워크샵의 형식을 소개했던 저번 글과는 다르게 오늘은 인물들이 '수증기'작품을 둘러싸고 주고 받는 내용을 일부 소개하고자 한다.


<낭독회에서의 대담>


코헤이) 많은 사건이 우리 눈앞을 지나쳐 흘러가 버립니다. 하지만 노세씨의 눈은 그것을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고 지나쳐 가는 사건으로서 그대로 그려내죠. 그 점이 우선 훌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슬로모션을 걸지 않고 우리가 사는 시간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하지만 이렇게 섬세하게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아름다워요. 삶을 격려해주는 듯한 소설이었습니다. (...) 실제 느낀 것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셨고요.


노세) 다만, 저와 야요이씨(소설 속 주인공)를 동일하게 보신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이건 미묘한 밸런스인데.. 야요이씨가 제가 느낀것을 많이 담아낸 인물인 건 맞아요. 하지만, 예를 들어 저는 아카네씨이기도 해요. 1인극 배우처럼은 못해도 전혀 다른 캐릭터들에게 각각 리얼리티를 부여해야 하죠. 저는 아카네씨여야 하고 시마다씨여야 하고 때론 오가타 교수여야 해요. 그렇지만 문제는 무도 다 저라면 재미가 없다는 거예요. 저는 이 세상을 꽤 좋아해요. 불쾌한 일도 많고 그런 것까지 좋아할 만큼 득도하지는 못했지만, 전부 뭉뚱그려 좋아하죠. 그래서 세상을 만만하게 그려내고 싶지 않아요. 세상은 저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당연한 사실이 먼저 있어요. 하지만 쓰는 건 어디까지나 저니까 어떻게 해야 소설이 내 자신이 아니라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 될 것인가 고민하죠. 그래서 가능한 한 자신을 작게 만듭니다. 보잘것 없고 무지한 존재로요. 그 캐릭터가 바로 야요이씨고, 야요이씨가 모르는 건 저도 모르는 걸로 했어요. 사건이라 하기도 뭣한 작은 일들이지만 야요이씨에게는 모든 사건이 갑작스레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이죠. 그에 대한 그녀의 반응을 저도 내내 함께하며, 뭔가 터널을 빠져나가는 느낌으로, 같은 몸인 채 다른 장소에 도달하게 하고 싶었어요.


코헤이) 다만...


<뒷풀이에서의 감상>


코헤이) 그 소설의 주인공인 야요이씨, 그 사람은 실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거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야요이에게 시마다는 진심으로 소중한 게 아닙니다.


노세) 어디서 그렇게 느끼셨나요?


코헤이)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걸 스스로 끝내거나 숨길 수 없습니다. 정말 누군가를 원한다면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이 내 안에서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야요이라는 주인공이 실은 시마다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세) 코헤이씨의 말씀은 소설은 쓴 제가 진정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지 않냐는 말씀이네요.


코헤이) 작가와 등장인물은 다릅니다. 노세씨도 그렇게 말했고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노세씨의 소설엔 자신의 신체적 감각이 가능한 한 정확하고 충실하게 문장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작가의 인식의 한계가 곧 작품 세계의 한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노세) 그건 결국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모르니까 세상이 좁다는 말씀이신가요.


코헤이) 제겐 그렇게 보였습니다. 눈앞을 지나쳐가는 걸 억지로라도 잡으려 하고.. 무리임을 알면서도 손을 뻗는... 그런 감정이 그 소설엔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 세상은 훨씬 더 잔혹합니다. 바람이 나무 사이로 빠져나가듯 가장 소중한 것을 갑자기 빼앗겨 버리기도 하죠. 그렇게 잔혹한 세상을 재현한 것이야말로 제가 읽고 싶은 소설임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타쿠야(노세의 편집자)) 작가는 어떤 경우든 독자의 주문에 답하는 형태로 소설을 써선 안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미숙하더라도 작가는 자신의 세계관을 토대로 작품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뿌리가 없는 셈이 되어 작가의 성장이 멈춰 버리죠. 저는 노세씨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제가 노세씨를 가장 신뢰하는 부분은 세상은 잔혹하다든가, 하는 그런 정의들에 섣불리 함몰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이 본 그대로 쓰려고 하고 그것이 노세씨의 뿌리인 거죠. 어쩌면 아직 모르는 게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 노세씨 앞에 말씀하신 것 같은 잔혹한 세상이 나타나면 노세씨는 그대로 써낼 겁니다.


이렇게 대사를 글로 옮겨 놓고 보니, 이 이야기는 영화라는 매체였기에 더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들의 표정과 침묵, 공기의 흐름까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대화였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렇게 분해해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인물들이 말하는 창작에 대한 태도는 근래 생각했던 나의 질문/생각과도 닿아 있다. 그들과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고 싶은 기분이 든다.


덧) '노세 코즈에' 작가의 <수증기>는 *노세 작가 역할의 배우가 직접 쓴 작품이라고 한다. 단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하기 때문에 영화 안에서 어떤 의미들을 가진 이야기를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썼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놀랐다. '배우'의 영역이 정말 커지게 연출하는 것 같다.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을때 가능한 일같다. 이런 시나리오는 어떤 방식으로 써지는지 궁금해졌다. 마침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 (영화 <해피 아워> 연출노트와 각본집) 이라는 책도 출판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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