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 근무를 하면 벌어지는 일
엄마, 배고파요..
전태일 열사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는 우리 근로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다 사회가 말을 들어주지 않자 그 한 몸을 과감히 불살랐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또한 아들의 죽음으로 각성하고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어 평생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셨다.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에서 시다일을 하면서 주말도 없이, 환풍기가 없는 공장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열악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웠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당연해 보이는 근로자로서의 권리는 이처럼 힘든 투쟁의 결과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한들 우리는 여전히 일로부터 고통을 받는다.
세상이 변했고 젊은이들에게 일의 가치는 옛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처럼 대단치 않다. 일보다는 내 삶이 훨씬 중요하다. 임원이 되는 게 어렵지만 그렇게 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내 인생 바쳐 열심히 일해서 임원이 되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다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가끔은 걱정스럽다. 만약 점점 더 일을 하지 않으려는 후배 세대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떻게 같이 일할까 벌써부터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조금 덜 일하고 더 많은 시간을 다른 곳에 사용해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남을 위한 일을 하는 데 쓰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일을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고 그럴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최대한 일을 적게 하는 게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바빠 죽겠어!
누군가가 안부를 물어왔을 때 우리는 곧잘 바쁘다, 정신없다고 대답하지 않은가? 왠지 바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는 바쁜 척을 한다. 뭔지 모를 두려움과 외로움을 별 것 아닌 일들로 덮어버리고 세상에 중요한 사람이 된 것마냥 느낄 수 있는 건 쓸데없이 바쁜사람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솔직히 생각해보자. 정말 행복한가? 짧디 짧은 한번의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라는 자원을 투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가? 여전히 일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2020년 기준 한국 연간 근로시간은 1908시간으로 독일이 1332시간인 것에 비해 1년에 576시간을 더 일한다(그래도 몇 년 전에는 2000시간이 넘었는데 줄긴 줄었다). 이를 일하는 날로 계산해보면 한국이 독일 노동자보다 2개월 더 일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이 더 많은 일을 하니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한국은 노동생산성이 무척 낮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독일의 55.3% 수준에 불과하다. 즉, 생산성 낮은 일을 남들보다 훨씬 오래 하고 있다.
출근해서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보고하기 위해 기다리고, 회식한다고 술 진탕 먹고 다음날 헤롱헤롱한 상태로 업무를 보고, 부하직원의 시간은 고려하지 않은데 훅훅 들어오는 옆치기 일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노동생산성이 왜 낮은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노동문화가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
그러나 삶에 대한 중요성이 공감을 얻으며 근로시간에 대한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지사는 2019년 8월부터 주4일 근로를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Work-Life Choice Challenge Summer 2019'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임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금요일을 쉬게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20%의 노동시간이 줄었으니까 10%만 생산성이 줄어도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걸까?
결과는 오히려 생산성이 증가했다. 그것도 약 40%나 증가했으며 전기사용량, 종이 사용량 등이 크게 줄었다. 직원의 생산성은 늘리고 비용은 감소했다.
배달의 민족 서비스를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직원은 2022년부터 주 32시간만 일하면 된다. 기존에도 월요병이 싫어 월요일은 1시부터 6시까지만 일하는 회사가 더 혁신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였다. 우아한형제들은 그럼 어떻게 됐을까? 굳이 이 회사의 성장성을 말하지는 않겠다. 지금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해왔고 주32시간을 실시하는 올해도 이러한 성장성에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시간이 적은 것이 또 하나의 매력적인 복지가 되면서 이를 도입하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젊은 회사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대기업보다 분위기도 젊고 근무환경도 좋고 일할 환경을 더 조성해주면서도 사람 대우를 해주는 신생기업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대대적 변화의 시작일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잔인한가. 주어진 시간을 꽉꽉 채우고도 남을 수 있도록, 넘치는 일을 주고서야 눈치를 안 준다. 사람보다는 일이 먼저다. 우리나라는 엉덩이로 일한다. 선진 시스템을 계속 외치고는 있으나 사람들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의식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개인적으로는 주4일을 도입해도 큰일 나지 않을 것 같다. 일부 공장의 경우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겠지만 사회적 변화를 위해 주4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주4일을 적극 시행해봐야 한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쓸데없는 일이 줄고 일이라는 명목으로 낭비되었던 자원을 아끼면서 생산성은 향상되고 사람들의 즐거움이 늘어날 것이다.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질 것이며 어쩌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쓸데없이 바쁘게 살지 않기로 하자. 바쁘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
토요일에도 일하던 시절, 주5일제를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거칠게 일어났다. 그때는 일 덜하면 기업이 망하고 산업이 무너질 줄 알았다. 당시와 비교해서 현재를 보라.
주4일 일해도 안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