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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피 Nov 19. 2024

픽션 같은 논픽션

<칩워>를 읽고

독서모임 덕에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나 혼자 읽으려 했다면 책 냄새만 맡고 바로 덮었을 책이다. 반도체라는 주제가 주는 묵직함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급망,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이야기까지.


그러나 이 책은 마치 소설 같은 전개를 통해 2020년대 수 조개의 0과 1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반도체의 역사와 그 쓸모, 그리고 이를 둘러싼 보이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매우 흥미롭게 다룬다.


반도체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함께 한다. 지금도 그러한 듯 보인다. 정확하고 빠른 연산을 수행해 내는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사들로 하여금 핵심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무역갈등을 빚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또 미국이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값싸고 말 잘 듣는 노동력이 있는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졌고, 호시탐탐 반도체 주도권을 가져오고 싶어 하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 또한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한편 각 산업의 리더십이 전 세계로 분산되어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미국은 칩 설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아이돌이지만 전세계의 스타 반도체들은 모두 대만에서 생산한다. 또한 반도체를 제조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부품들은 전세계에서 공급되어 사실상 반도체 산업을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본다. 만약 10년 전의 내가 AI 시대가 올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면, 내가 인텔이 아닌 엔비디아를 고를 수 있었을까? 아예 다른 관점에서 삼성전자가 HBM 조직을 축소한 것이 잘못된 결정이라고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이를 삼성전자의 조직문화 탓으로 돌리는 것이 합리적일까? 삼성전자는 1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폐쇄적인 조직이었다.


책을 마무리할 때 즈음 미국 반도체 회사들에서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인재들을 영입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봤다. 씁쓸하기는 하지만 한국의 두뇌는 앞으로 미국에 흡수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반도체와 그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생겼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경제신문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삼성전자 사기 전에 읽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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