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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피 Aug 28. 2021

그 연봉 받고 왜 엄살이세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직장문화 (2)

돈 더 많이 받는 팀장님이 더 열심히 일하셔야죠!


입사하고 1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외부교육기관을 통해 직무교육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회사에서 온 다양한 직급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팀장급 한 분이 20대 사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며 요즘 MZ세대의 당돌함을 고발했다. 다들 깜짝 놀라며 팀장을 위로해주는 분위기였다. 나는 속으로 "뭐가 문제지, 어느 정도 맞는 말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과거 호봉제에서 최근 연봉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연봉제란 조금 복잡하기는 해도 결국 개인의 업무성과나 능력에 따라 연봉을 주는 것이라고 배웠다. 적어도 인사팀은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열심히 하면 같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현실은 달랐다. 무늬는 연봉제였지만 같은 직급의 사람들은 업무의 난이도나 업무강도와는 상관없이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았다.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 보고 들었던, 연말에 테이블에서 관리자와 함께 마주 앉아 내가 이 회사를 위해 무엇을 했고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이야기 하는 '연봉협상'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정년보장이 되는 분위기를 가진 회사에서는 억대 연봉을 받는 수많은 한량들을 볼 수 있다. 아주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걸 알고 태도를 바꾼 눈치 빠른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런 수많은 한량들과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업무 의욕이 상당히 떨어진다. 프로선수와 아마추어 선수가 함께 플레이하면 프로선수들은 뛸 힘을 잃는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회사의 경우 관리자급의 일부 능력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일은 연봉이 비교적 낮은 젊은 사람들이 한다. 일도 많은데 사회적인 힘까지 없어서 무슨 일을 하려면 실례지만, 죄송하지만, 바쁘신 거 잘 알고 있지만 등등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고생스럽게 일한다. 윗 사람의 문의에는 아주 예의바르고 논리적으로 대답을 해야 한다. 반대로 윗사람에게 물어볼 때는 한참을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우리회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젊은 사람들이 힘든 구조다. 그럼에도 한량들은 회사에 불만이 많다. 불만이 많아서 업무시간에 커피를 마시러 나가 그 불만을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바빠죽겠다면서 커피는 꼭 마시고 담배는 꼭 핀다. 그리고 깔끔하게 정시퇴근이다.


스스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일을 열심히 한다. 내려놓는 법을 배우지 못해 주어진 일이 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혹은 강박증 같은 것이 있다. 그 결과 남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고 이는 자연스레 더 많고 더 중요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왔다. 좋게 생각하면 빨리 성장할 수 있지만 성장하는 만큼 보상을 받지 않는다면 성장욕구는 꺾일 수밖에 없다.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는 사람들이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일찍 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내일까지 해야 하는 수많은 일을 하고 있는 심정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언젠가 1시간 정도 더 야근하고 퇴근할 때 오늘 집에 무슨 일 있냐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상사의 모습이 기억난다.


최근 회사에 일이 많아졌다. 회사의 전략상 우리 사업부가 비현실적일 만큼 고성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업무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자꾸 회사를 떠나니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의욕을 가지고 일하기 힘들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니 십수 년 동안 회사의 은혜를 입어가며 흐르는 꿀을 맛보던 사람들의 불만이 생겼다. 생색을 낸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 높아간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보다 많은 일을 지금껏 해왔어요. 그 연봉받고 왜 그렇게 엄살이세요. 다같이 힘드니 조금만 같이 버텨봐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사실 다 같이 고생하는 직장인이 서로 비교하고 비난하고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인생은 스스로 택하는 것이다. 다만 적어도 조직이 공정했으면 좋겠다. 공정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하고 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본인의 인생을 위해 좀 더 편한 일을 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시간을 얻는 대신 회사로부터의 보상은 조금 덜 받는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그럼 이런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느낄 수 있는 미안함이 줄어들 것이다.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MZ세대가 얼마나 불공정에 민감한지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관리의 편의를 위해 단순히 직급이나 직무에 따라서 같은 연봉을 주는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으면 좋겠다.


알고 있다. 한심해보이는 사람들도 한 때는 열정을 불태웠을 거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이러한 시스템의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직급이 높아질수록 당연하다시피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건 한 사람이 직장생활에서 갖게 되는 일종의 보험이다. 이 정도 대우는 보장되어 있어야 어렵게 뽑은 직원들이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다.

회사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인사를 관리해야 한다면 미국처럼 바로 해고해버릴 수 있게 하거나 모든 직원을 계약직으로 만들어 매년 계약하는 방법이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소모품이 아니다. 존재 자체를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다. 신체적인 부분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관리하고 치료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다. 한 인간으로서는,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삶도 누리면서 회사에도 기여하는 게 아무래도 좋다.


얼마 전부터 우리회사 최고경영자의 입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말이 나왔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는 말처럼 큰 기대가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좋게 보인다. 앞으로도 열심히 일할 나는 스스로 동기부여를 잃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언젠가 열정이 식어버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없을 때, 회사가 계속해서 연료를 공급해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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