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의 습한 공기가 내게 물었다,

혼자서도 숨 쉴수 있나요?

by 송하루

오토바이 소음 너머, 완벽한 타인의 방


창문을 닫아도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이 도시의 심장박동처럼 쿵쿵거립니다.

끈적하고 뜨거운 공기가 낯선 언어들과 뒤엉켜 돌아가는 곳, 여기는 호치민입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관계와 시선으로부터 도망치듯 날아온 이곳에서, 나는 철저히 이방인입니다.

커튼을 치면 대낮에도 어둠이 내려앉는

방 한구석에 앉아, 낯선 열대 과일의 지나치게 화려한 색감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주는 해방감은 아주 잠시였고, 곧이어 거대한 고독이 밀물처럼 들이닥쳤습니다.

익숙한 고통이 말을 걸어오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다섯 번의 수술자국이 선명한 몸을 이끌고 이역만리까지 왔지만, 결국 내가 마주하는 것은 달라진 풍경이 아니라 여전히 아픈 나의 몸뚱이였습니다.

한국의 겨울 새벽이나 호치민의 열대야나,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통증의 무게는 똑같았습니다.

낯선 천장 아래서 눈을 뜰 때마다, 나는 이곳의 습기만큼이나 무거운 외로움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다시 배우는 호흡**


이곳의 공기는 한국과는 다릅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묵직하고 뜨거운 수분이 가득 찹니다.

마치 물속에서 숨을 쉬는 듯 버겁게 느껴질 때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처음 자가 호흡을 시도하던 그 순간의 공포가 되살아납니다.

"살아야 한다"는 의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순간들. 이혼 도장을 찍고 나오던 법원 앞의 차가운 바람, 갱년기 열감으로 온몸이 불타오르던 밤들, 그리고 수술대 위에서 느꼈던 절대적인 고독. 그 모든 기억이 이 낯선 도시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유령처럼 되살아납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내 몸이 내는 비명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국에서는 "괜찮은 척" 하느라 바빠 외면했던 신호들입니다.

땀으로 젖은 옷이 수술복처럼 느껴지고, 낯선 향신료 냄새에 속이 울렁거릴 때마다 나는 인정해야 했습니다. 나는 휴양을 온 것이 아니라, 나의 망가진 몸과 마음을 데리고 치열하게 '전지훈련'을 온 것임을. 이 무겁고 더운 공기 속에서도 어떻게든 숨을 쉬어내려 애쓰는 내 폐가, 다섯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고도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이 새삼스럽게, 그리고 눈물겹게 느껴졌습니다.


**익명의 도시가 건네는 투박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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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낯섦이 나를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나의 병력을 모릅니다.

내가 이혼녀라는 사실도, 내가 밤마다 불면에 시달린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외국인 중 한 명일 뿐입니다.

그 완벽한 익명성 속에서 나는 비로소 '환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그저 '숨 쉬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동정하지 않고, 아무도 내게 "힘내라"는 폭력적인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그 무관심한 친절 속에서 나는 내 속도대로 걷고, 내 리듬대로 숨을 고릅니다.

너무 더워서 움직이기조차 힘든 한낮이면, 나는 죄책감 없이 침대에 누워 내 몸의 열기를 식힙니다.

한국이었다면 게으름이라 자책했을 그 시간을, 이곳의 기후를 핑계 삼아 '회복의 정지'로 받아들입니다.

땀을 흘리고 나면 샤워를 하고, 다시 땀을 흘리면 옷을 갈아입는 단순한 루틴. 이 도시의 뜨거움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거창한 극복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내 몸을 쾌적하게 유지하려는 아주 작은 노력이었습니다.


**이역만리에서도, 오늘도 살아남았습니다**


창밖으로 스콜이 쏟아집니다.

순식간에 도시의 열기를 식히고 지나가는 저 거대한 빗줄기처럼, 내 안의 고통도 언젠가는 저렇게 시원하게 씻겨 내려갈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없는 이 낯선 호치민의 방에서, 나는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섯 번의 사선을 넘어 도착한 곳이 비록 화려한 낙원은 아닐지라도, 나는 이곳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이 어디든, 혹시 주변에 아무도 없어 외롭다고 느끼시나요.

낯선 환경과 버거운 몸 때문에 혼자 울음을 삼키고 계시진 않나요.

그렇다면 부디 기억해 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구 반대편, 이 뜨겁고 낯선 도시에도 당신처럼 오늘 하루를 간신히, 그러나 위대하게 살아낸 한 여자가 있습니다. 끈적한 공기 속에서 깊은 숨을 한 번 내쉬며, 당신의 안녕을 빕니다.

오늘도 살아남으셨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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