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위에 덧칠한 다정한 농담 한 줄
오전 10시, 거실 창가로 길게 드리워진 햇살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질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평범한 햇살은 제게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습니다.
다섯 번의 수술, 차가운 금속이 몸을 가르고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낙인처럼 남은 흉터들.
사람들은 제게 묻곤 합니다.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대
단한 철학이나 숭고한 결의가 저를 구원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를 살린 건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죠.
고통의 정점에서 터져 나온 헛웃음, 그리고 내 몸이 보내는 아주 미세한 신호들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면서 저는 비로소 죽음의 그림자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수술대 위에서 마취 기운이 퍼지기 직전, 천장의 무영등은 마치 먼 우주의 별처럼 아득하게 보였습니다.
다섯 번이나 반복된 그 정적 속에서 저는 생의 본질적인 질문들과 마주했습니다.
'나는 왜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을 하기도 전에 몸은 폐허가 되었고, 정신은 텅 빈 껍데기처럼 너덜너덜해졌습니다.
특히 새벽 3시의 각성은 지독한 형벌 같았습니다.
온 세상이 잠든 고요 속에서 나 홀로 깨어 거친 숨을 몰아쉴 때, 그 숨소리는 마치 고장 난 기계음처럼 서글프게 들렸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편안한 호흡'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이었는지,
코끝을 스치는 서늘한 공기 한 자락이 얼마나 간절한 구원이었는지를 몸소 겪으며 깨달았습니다.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붙잡으려 애쓰던 그 비참한 순간들 속에서,
저는 역설적으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배웠습니다.
혈당이 널을 뛰고 몸의 균형이 무너질 때마다 저는 제 몸을 원망했습니다
. "왜 너는 이렇게 나약하니?"라고 쏘아붙였죠.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 몸은 망가진 게 아니라, 주인의 무관심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급격히 치솟는 수치들은 비명이 아니라, 제발 나를 좀 돌봐달라는 몸의 눈물겨운 호소였습니다.
이혼과 갱년기, 그리고 암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동시에 덮쳤을 때 저를 지탱해 준 건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리듬'이었습니다.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 제가 한 일은 대단한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 짧은 반복에 집중하는 것.
요동치는 감정 대신 내 몸이 보내는 정직한 신호들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제가 찾은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프거나 고난에 처하면 '의지력'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다섯 번의 수술을 거치며 제가 배운 건, 인간의 의지라는 게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유리 같은지였습니다.
저를 다시 일으킨 건 강한 정신력이 아니라, 나를 돌보기 위해 정성스럽게 구축한 작은 '시스템'들이었습니다.
"나는 망가진 게 아니라, 그저 긴 회복의 시간을 건너고 있을 뿐이다."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기자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의 불면은 사색의 시간으로, 거친 호흡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리듬으로 변모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완벽한 건강을 꿈꾸지 않습니다.
대신, 오늘 하루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리듬을 타고 흐르는 법을 익혔습니다.
억지로 노를 젓지 않아도 강물은 흐릅니다.
저 역시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멈추며 나아가는 중입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요?
제게 인생은 '가까이서 봐도 가끔은 피식 웃음이 나는 블랙코미디'입니다.
배에 새겨진 흉터들을 보며 "이건 내 인생의 연륜이 빚어낸 나이테야"라고 너스레를 떨 수 있게 된 건, 고통을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일들은 무엇인가요?
혹시 스스로를 '고장 난 사람' 취급하며 자책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부디 잊지 마세요.
당신이 오늘 숨을 쉬고, 햇살을 느끼고,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위대한 생존자입니다.
거창한 성공이나 눈부신 회복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긴 것, 그 자체로 당신은 생의 찬란한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고, 우리는 각자의 무대에서 주연 배우로 서 있습니다.
때로는 대사를 잊고, 때로는 무대 위에서 넘어지기도 하겠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같이 웃으며 이 막을 끝까지 올려봐요.
오늘도 살아남으셨군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신의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가벼운 숨으로 채워지길, 그리고 그 틈새로 작은 웃음 한 자락이 스며들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늘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든 아주 작은 순간이 있었나요?
거창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 사소한 기쁨을 나누어주신다면, 저의 다음 에세이에 그 따뜻한 기운을 담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