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지독하게 외롭다

찻잔 속에 고인 적막, 그 깊이를 재는 시간

by 송하루

가끔은, 지독하게 외롭다


찻잔 속에 담긴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가슴 언저리까지 닿는 데 걸리는 시간.

그 짧은 찰나에 나는 종종 길을 잃는다.

창밖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분주하게 날갯짓을 하며 아침을 열고,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활기찬 소음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내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어제의 슬픔을 머금은 채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암이라는 선고를 처음 받았을 때보다, 수술대에 다섯 번이나 오르며 죽음의 문턱을 기웃거릴 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살아남은 뒤의 고요'였다.

홀로 남겨진 거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새벽이면 나는 세상에서 나만 혼자 섬처럼 떨어져 나온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그럴 때면 이혼이라는 마침표와 갱년기라는 불청객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나를 무너뜨리려 했다.

가끔은 정말이지, 지독하게 외롭다.

이 외로움은 사람이 곁에 없어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감각,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여자의 눈빛, 그리고 누구에게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의 무게가 나를 고립시켰다.

나는 그 고립된 방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숨을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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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의 수술을 거치며 내가 배운 것은 삶의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가장 밑바닥에서 나를 지탱하는 비루하고도 숭고한 질서들이었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날 때마다 나는 가장 먼저 내 코끝에 머무는 공기의 감촉을 확인했다.

"아, 아직 숨을 쉬고 있구나." 그것은 질문인 동시에 유일한 대답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새벽 3시, 입안이 바짝 마른 채 깨어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을 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입을 벌리고 자느라 거칠어진 목구멍의 비참함을 견디게 하는 것은 "내일부터 잘 살자"는 다짐이 아니라, 조용히 입술을 다물고 코로 깊은 숨 한 모금을 들이마시는 작은 행위였다.

혈당이 널뛰듯 내 감정도 널뛰던 날들, 나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고장'이 아닌 '애원'으로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치솟는 짜증과 무기력함은 내 마음이 못나서가 아니라, 내 몸속 어딘가에서 에너지가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간절한 신호였다.

5번의 사선을 넘으며 나는 깨달았다.

내 몸은 나를 괴롭히는 감옥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오늘도 고군분투 중인 가장 충직한 아군이라는 사실을. 외로움이 밀려올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마음을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가워진 발끝을 따뜻하게 데우고 거친 숨을 고르게 펴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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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내가 망가진 기계 같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겪지 않을 일을 다섯 번이나 겪으며, 내 인생의 페이지는 여기저기 찢기고 얼룩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망가진 게 아니라, 그저 회복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러 온 적군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너를 좀 더 다정하게 돌봐줘"라고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다.

회복이란 대단한 반전이 아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깊게 숨 쉬고, 무너진 리듬을 아주 조금씩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 나를 돌보는 그 작은 질서들이 모여 비로소 삶이라는 무늬를 다시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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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살아남은 당신에게 묻고 싶다.

혹시 오늘 하루도 남몰래 외로움과 싸우며 버텨오지는 않았느냐고.

거울 속의 내가 낯설고, 내 몸이 내 맘 같지 않아 서러운 밤을 보내지는 않았느냐고.

괜찮다. 정말로 괜찮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수술대 위에서, 혹은 각자의 전쟁터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전우들이다.

거창한 성공이나 눈부신 성취가 없어도 좋다.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오느라 애쓴 나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삶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잠시 잊었을 뿐이다.

내일 아침, 창가에 비칠 햇살이 당신의 어깨를 조용히 다독여줄 때까지, 그저 편안한 숨을 내쉬며 이 밤을 견뎌주기를 바란다.

당신이 오늘 살아남았다는 것, 그것은 이미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증거니까.

외로움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때, 부디 외면하지 말고 따뜻한 차 한 잔 내어주며 물어봐 주길.

"많이 힘들었지? 이제 내가 곁에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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